2016.07.31 07:21

오늘만 사는 사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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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일.

 이걸 뭐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쉽게도 지금도 모른다.
그냥 하루라 부르기로 했다. '오늘'은 안된다. 어제도 오늘이었고, 내일도 오늘일 것이니까.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늘이 아니다. 그래서 난 오늘을 하루라 부른다. 왜냐하면..
 내 시간은 오늘에서 멈췄으니까.

침대에서 꾸물거리지 않고 바로 눈을 뜬다. 익숙한 물건들이 차례차례 시야에 들어온다.
아마 상아색인 벽지, 책상 위에 가득 올려진 문제집들,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문과 그걸 막으려 애쓰는 커튼,
눈을 돌려보면 둘째 칸이 내려앉은 서랍장. 그리고 그 위에 올려져 있는 옷들과..

더는 움직이지 않는 시계.

정신이 깨어감에 따라 여러 소리들도 들려온다. 일상이었다면 기억하지 못했을 수많은 소리들.
분명 나도 기억할 수 없었어야 했다. 단지 어렴풋한 단편으로써 다른 새로운 기억들에 묻혀야 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오늘의 최고 기온이 29도까지 올라간다는 이야기와 미세먼지 농도가 낮을 것이란 이야기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몸을 털고 일어나 평소같이 준비하고 평소같이 밥을 먹었다. 그렇게 7시 25분쯤 준비를 마쳤다.
 '"웬일이니?"'라고 엄마가 물어보신다. 
아, 맞아. 사실 그 하루는 유독 다른 날보다 빠르게 준비했던 날이었다. 
뭐, 어쨌든 난 평소와 같이 7시 반에 집을 나서 차를 타고 7시 41분에 학교 근처에서 내린다. 그게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정확히는 128번째 6월 2일이었다. 

정말 오늘이 몇 번째인지 이것만은 잊지 않으려고 기를 써서 외운 거다. 오늘은 128번째다.

 차에서 내려보면 3명의 학생이 걸어가고 있고 그중 한 명은 종이봉투를 들고 있다. 
오른쪽엔 두 명의 여성이 담소를 나누며 도로를 건너간다.
그것이 현충일에 있을 일정이란 것까지 알게 됐지만, 아쉽게도 난 그 연휴를 즐길 수 없을 것 같다. 영원히 즐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조금 있으면 저쪽 밭고랑에서 무언가를 쪼아먹던 참새들이 날아올라 전신주 위로 올라간다.
다음엔 뭘 외워볼까. 사실 이런 것들은 딱히 외우려고 한 게 아니다. 100번가량의 반복 끝에 머릿속에 박혀버렸다.
예를 들면 큰 도로에서 교문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가로수가 29그루라던가, 우리 학교 계단 단수가 한 층당 22단이라던가.
이젠 이 계단을 눈감고도 걸어갈 수 있다. 어차피 이른 시간이라 아무랑도 부딪힐 일 없다.
 이날 하루는 그 전날에 문단속이 잘 돼서 일찍 온 나는 선생님이 도착하실 때까지 복도에서 기다려야 한다.
이날엔 선생님이 8시 11분에 도착하셨었다. 그리고 그 전에 친구 한 명이 도착한다.
 '"안녕"'
항상 나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하던 박현성이 나에게 살갑게 인사해온다.
아무래도 아침 일찍 가장 처음 얼굴을 보던 친구라 그런지 어느새 꽤 가깝게 지내게 된 사이. 그렇기에
나도 손을 흔들며 인사에 응한다. 얼굴엔 미소를 띠며, 살갑게.

128번째로 받는 똑같은 인사였다.

 "왜, 얼굴이 벌레 씹은 표정이냐? 뭔일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날 거야. 왜냐하면, 오늘은 30분 동안 복도에서 기다릴 예정이거든.
머릿속에선 몇 번이고 맴돈 소리이지만, 한 번도 입 밖으로 소리가 되어 나간 적은 없었다. 슬슬 지치고, 질려가지만. 

그래도, 한 번도 내가 이렇게 같은 하루를 반복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본 적은 없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좀처럼 결론이 보이진 않는다. 같은 하루를 여러 번 살아봐도 내가 나를 모른단 사실은 그다지 변화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모른다. 앞으로도 모를 거란 사실에, 희한하게도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아직 나를 예측하지 못했기에, 아직 아주 질려버린 것은 아닌가 보다.
 "오늘은 선생님이 늦으실 것 같아 아마 8시는 넘어서야 오실걸?"
이번엔 말해봤다. 내가 이렇게 한다면 세상이 바뀔까?
내가 말하는 구체적인 시간에 반응을 보이며 그 친구가 말한다. 
 "에?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쌤이 그러셔?"
아니, 그래도 난 알아. 수많은 오늘을 살았으니까. 
그나저나 이 질문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어쩌면 똑같은 하루를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수업을 받으며, 같은 사건이 반복되고,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 반의 시계는 약 2분 빨랐다.
맨 앞줄 왼쪽 구석의 친구는 3교시까지 쭉 잤다.
오늘 1교시 수업은 교직원 회의가 있어 10분 늦게 시작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단 사실을 깨닫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원랜 없었던 나의 한마디는 지극히 당연한 단 한 번의 반응을 이끌어냈을 뿐인가보다.
더 많은 걸 말해볼까? 더 많은 것을 움직여볼까?
이렇게 한다면 과연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지금까지 없었던. 같은 하루에서 다른 일들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과연 내가 무슨 일을 벌여야 하는 걸까.

 만약 바꾼다면 무엇이 변할까.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어쩌면 난, 나의 행동이 바꿔버리는 결과가 두려운 걸지도 몰라.
같은 하루에서 다른 일들. 없었던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 그게 두려웠던 거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박현성이 내 왼쪽 어깨를 두드리며 물어온다. 하지만 분명 오른쪽에 있겠지. 이건 이 친구가 자주 치는 장난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오른쪽을 돌아봤지만, 건너편의 가로수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웬일로 얘는 그대로 가까운 방향의 어깨를 두드렸다. 
웬일로.. 정말로 오랜만에 드는 생각이었다. 항상 똑같았던 하루에서 웬일로는 찾아볼 수 없는 단어였는데.
 "뭔가 너 오늘 하루종일 말수도 적고, 이상하다?"
 아, 그랬었나?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러게, 이번 하루는 말이 적었네."
 "더위 먹었냐, 안 하던 헛소리를 하네?"
아차, 무심코 못 알아들을 소리를 해버렸다.
나도 이게 정말로 더위 먹어서 헛소리하는 거였으면 좋겠다.
100번이 넘도록 같은 하루를 살아가면서, 한 번도 덥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기억 못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더위를 먹었단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으리라.
난 에어컨 바람에 춥다고는 하지만 태양 때문에 덥다고는 안 했으니까. 
물론 지금이 한여름이 아니라 현충일을 앞둔 6월 초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말이 또 헛나왔네. 오늘 좀 덥다. 그지?"
그래, '웬일로' 오늘은 좀 덥다고 느낀 것 같다.
 "그럼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으러 갈래?."

 수많은 하루를 살면서 그걸 바꾸려 애쓰지 않은 건 두려워서였다.
난 어렸을 때 부터 무언가를 결정하고 거기에 책임을 지는 게 두려웠다.

 "웬일이냐? 니가 덥단 소리를 다 하고."
 현성은 '어디보자.. 오늘 날씨가..'라 중얼거리며 아이스크림은 입에 문 채로 한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본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희한한 일이었구나.
친구의 액정에 나타난 날짜는 6월 2일, 목요일이었다.
6월 2일이다. 곧 있으면 130번째 6월 2일이 될지도 모른다. 
필사적으로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오늘은 128번째 6월 2일이다.
지금 이 상황을 바꾸고 싶다. 내가 아직 맞아보지 못한. 현충일이 있는 3일 동안의 주말을 맞아보고 싶다.
원래 그냥 흘러가던 지루한 일상이었지만, 그 평범한 일상을 이토록 간절하게 무언가를 원한 적이 있었을까?
고요한 적막 속에 아침을 가득 채우던 안개를 보고 싶다.
축축하지만 감상에 빠지게 하던 빗소리가 듣고 싶다.
한여름의 폭염속에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를 듣고 싶다.
가을 속에 물들어가는 단풍잎이 보고 싶다.
한겨울의 추위 속에 조용히 쌓여가는 눈송이를 보고 싶다.
음... 그리고..
아, 더이상 딱히 생각나는 건 없었다. 나머지는 오늘 동안에도 해볼 수 있는 소소한 거려나.
 "오늘 집에 가서 뭐할 거야?"
생각보다 평범한 날씨에 흥미를 잃었는지, 하루 동안 이상했던 나에 관해 묻는건지, 아니면 그냥 일상의 일부분인지 모를 질문을 해온다.
우린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글쎄, 아마 게임할 것 같은데?"
문득 내 생각의 틈새 사이로 질문 하나가 비집고 들어온다. 물론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가 오간다. 여기는 내가 아는 하루에 포함돼 있었다. 
어쩌면 이게 기회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한한 하루를 사는 기회.
내가 하고 싶은 소소한 것들을 가득 해보는 기회
뭐야, 이렇게 생각해보니 엄청 좋은 기회잖아?

 그래도, 난 내일이 보고 싶었다.
설령 내가 원하지 않던 결과가 나올 거라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내일을 보고 싶다.

 "이제야 좀 평소의 얼굴이네."
슬슬 고민이 끝났으니까. 그나저나 얘 생각보다 더 눈치가 빠른 친구였다. 이건 처음 아는데?
그래도 이렇게 걱정해주다니 나한텐 참 좋은 친구려나.
 "평소엔 어떤데?'
 "미친놈 같어."
야이ㅅ.. 방금 한 생각은 취소하기로 하자.
 "그래서, 하루종일 뭘 그렇게 고민한 건데?"
내가 너한테 말해줘도 넌 못 알아들을 이야기를 고민했어.
 "내일에 대해 고민해봤어."
아니나 다를까. 어처구니없단 표정이다.
지금 나한텐 가장 심각한 고민인데? 
 "뭐, 있어 중요한 일이."
 "말 못할 이야기면 말고. 내일 봐."
그러곤 현성은 신호등을 건너 저쪽으로 천천히 멀어져간다.
난 그 등을 향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래. 친구야, 다음의 오늘엔 깜짝 놀랄 준비하라고."





제가 글쓰는걸 좋아한단 사실은 앞으로도 변할 것 같진 않습니다. 틈틈히 써 내려가야죠.

사실 이 소설, 수학 모평볼때 문제 못 풀어서 남은 시간에 구상한 게 시초에요. 
'문제도 못 풀겠는데 시간은 많이 남았어!' 이게 왠지 수학시험시간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아서...
이런 느낌 안 들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럴려면 이런 쓸데없어보이는 글 쓸 시간에 공부 더 해야겠지만..

원래 '지나간 일은 내 선택이었으니까 후회하지 말자!' 란 생각을 품고 살고 있습니다만, 지금 제가 옛날에 쓴 글들을 보니 '이런 걸 사람들에게 보여줬었다니, 완전 후회스럽다!' 란 생각이 가득해지네요. 
지금은... 그때보단 낫겠죠? (아니어도 그냥 그렇다고 해줘요.)

우와 쓸데없어라. 보는 사람도 없을 것 같은 사이트에 조용히 글 하나 더 올려봤어요.
뭐, 그래도 있는 게시판인데. 써야죠.........

그리고 이거 읽고 있는 모니터 앞의 님! 키보드좀 움직여서 덧글좀 남겨주세요. 
지금 이 사이트, 그거 많이 필요하거든요.

으아ㅏㅏㅏ 지금 이 글 쓰고있는데 귀뚜라미가 방에 처들어왔어!!!

+다행히 퇴치 성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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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루트에 출석만 하고 있는 Oct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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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토 2016.08.26 05:05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ㅠㅠ 이미 죽은 사이트에 간간히 들려주셔서 글도 써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ㅠㅠ
  • profile
    Octa 2016.08.27 02:34
    그러게요 ㅋㅋ 정말 오랜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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