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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두두두─────

적색 갈기의 말이 끈끈한 침을 흘리며 황무지를 내달리고 있다.

 

"히럇! 핫!"

 

이미 한계에 달한 듯한 말의 옆구리에 박차를 가하는 한 사내.

사내의 얼굴이 그다지 못생긴 편은 아니지만, 한쪽 뺨이 발갛게 부어오른 비대칭적인 면목이 언뜻 보면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허나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검붉게 말라붙은 핏자국이 선명히 비치는 플레이트 아머와 부은 얼굴을 한층 뜨겁게 데우고 있을 굵은 눈물줄기를 보면서도 그를 비웃을 무뢰배는 없을 것이다.

눈 뜨고는 차마 보기 힘든 몰골의 사내의 표정이 격정에 흉하게 일그러진다.

 

"단장……!"

 

쉼없이 말을 혹사해가며 오직 한 방향만을 향할 뿐, 사내는 그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단장의 명에 따라, 단장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나를 잊어라! 아직도 기사도를 운운할 자존심이 남았더냐!]

 

제론은 아까까지만 해도 얼얼했던, 허나 이젠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는 손바닥을 펴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작 기사도에 얽매인 채인 내가 할 말이던가."

 

카녹스, 친동생처럼 아껴왔던 그가 벌써 자신을 위할 정도로 성숙했다는 사실이 대견한 한편 가슴아프기도 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살인이 두려워 벌벌 떨던 겁쟁이였건만.'

 

그 짧은 시간동안 정신적으로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전쟁을 지나와 참혹한 현실을 너무 일찍 알게 된 덕이 컸을 터.

평화를 위해 제 재능을 펼쳐도 모자랄 지경이거늘, 엉뚱한 시기를 만나 무력과 명예를 중히 여기게 되었으니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이 전쟁에 희생되기엔 녀석은 아까운 인재이다.'

 

기사의 길을 유일생(唯一生)의 길로 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였다.

자신의 죽음으로 이 마지막 전쟁이 끝난다면 그 역시 다른 삶을 꿈꿀 여유를 가질 수 있을 터이다.

 

'그 녀석을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죽어줄 수는 없는 노릇.'

 

생각을 마친 제론이 바닥에 처박힌 검을 지지대 삼아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울컥, 울컥.

깊은 검상이 자리한 가슴께에서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제론!"

 

삼황자의 절규에 가까운 부르짖음이 제론의 귀에 선명히 들려왔다.

주군의 부름에 답하는 것은 기사의 기본되는 도리.

 

"저는, 괜……."

 

쿨럭!

대답을 하려 했으나, 죽은 피와 함께 올라온 기침을 뱉어내는 꼴을 보이고 말았다.

허나 그의 눈빛은 아직 굳건했다.

아직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섬길 수 있는 존재가 살아있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망가진 기사는 제 '도리'를 다 하기 위해 일어설 수 있는 것이었다.

 

"그만하면 됐다! 이제 제발 몸을 사리란 말이다!"

 

백마의 다리가, 어린 소년의 상처입은 다리가, 정치계의 끝자락에 몰려 죽음의 구렁텅이에 도달한 한 제국의 황자가 제론의 눈에 차례로 담겼다.

위험한 상황이다, 제론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적에게 등을 돌린 황자의 실책이 죽음을 부르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엔 충분했음이라.

 

"저하!"

 

제론의 몸이 깊은 외상에 삐걱거리면서도 빛살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콰앙!

검과 검의 격돌로 생겼다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법한 굉장한 소리와 파장이 전장의 모든 것들을 멈추게 만들었다.

 

"허어……!"

 

"저, 저 공격을 받아내다니!"

 

선명하게 뿜어져 나온 두 오러 블레이드.

단 한 합의 공방만으로 주위 5m 일대를 초토화시켜버린 두 인물의 대치에, 여기저기에서 웅성임이 일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했다.

제론이 마주한 상대, 슈미츠 공작의 알려진 무위는 이미 소드 마스터의 정점에 달해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한 발을 내딛은, 그야말로 최상급 소드 마스터의 지경에 필적했던 것이다.

 

"…알량한 재주로 본 실력을 숨겼군."

 

슈미츠 공작의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묻어나왔다.

간만에 만난 적수의 존재가 그의 흥미를 불러일으켰기에.

물론 흉상이 너무 깊어 금방 죽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으나, 제논이 보여준 무위는 그에게 있어 연습상대로서 조금의 손색도 없다는 인식을 주기엔 충분했다.

 

"재미있는 선물을 받은 덕이지요."

 

반응조차 맘에 드는 자.

제론을 적으로 만났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느낀 슈미츠 공작의 입에 이윽고 미소가 지워졌다.

 

"사사로운 제안을 하나 해도 되겠는가."

 

"제 주군은 삼황자 저하, 한 분뿐이십니다."

 

짧은 침묵.

허나 수많은 질답이 눈빛을 통해 이루어졌고, 곧 슈미츠 공작의 입에 고소가 지어졌다.

 

"…그런가."

 

중얼거리듯 대화를 끝맺은 슈미츠 공작의 검에 강하게 압축되어 희다 못해 투명한 빛을 띠는 오러 블레이드가 맺어졌다.

 

"그렇다면, 단 한 수로 끝내도록 하지."

 

슈미츠 공작의 굳은 눈을 한동안 주시하던 제론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이번 합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사상자는 내지 않는 것으로 함이 어떻겠습니까."

 

처음엔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슈미츠 공작이었지만, 제론의 눈의 움직임을 확인하고는 금세 오러 블레이드를 거두었다.

제론의 눈은 슈미츠 공작의 곁에 다가온 이황자를 향하고 있었다.

 

"허가하지 않겠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강한 인상의 이황자가 불쾌함을 온 안면에 내비치며 물었지만, 정작 부탁하는 처지인 제론의 태도에는 여유마저 느껴졌다.

 

"제 검이 저하를 향하겠지요."

 

"건방진!"

 

"기다려 주십시오, 전하."

 

격분한 이황자를 말 한 마디로 진정시킨 슈미츠 공작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무슨 뜻이지?"

 

순간, 제론의 균형이 살짝 틀어졌다.

 

'시간이 없다.'

 

자신의 몸이 예상외로 심각한 상황에 처했음을 인지한 제론의 입이 비틀어졌다.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삼황자 저하의 대리를 자청하여 이 자리에서 이황자 저하께 결투를 신청한 것으로, 이황자 저하께서는 슈미츠 공작님을 대리로 세워 결투를 받아들인 것으로. 이 단기전(單騎戰)을 마지막으로 이번 전쟁의 성패를 결정하자는 것입니다."

 

이황자의 눈이 살짝 이채를 띠었다.

사실 처음엔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속셈이 무엇인지 떠볼 요량으로 제안에 대한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허나 제론이 내세운 제안은 어떤 식으로 입에 넣고 굴려보아도 자신에게 이로운 제안임이 틀림없었다.

 

'그저 허세만 넘치는, 뼛속까지 기사일 뿐인 녀석 아닌가.'

 

멍청할 정도로 순수히 '기사도'에 몸을 바친 자.

제론을 그렇게 폄하한 이황자는 곧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승리를 하여도 좋고, 그가 패배를 하여도 좋다.

어떤 식으로든 제론이 최상급 소드 마스터인 슈미츠 공작에게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은 뻔해 보였고, 그렇다면 설령 슈미츠 공작이 진다 해도 자신의 수하를 부려서 어떻게든 삼황자와 함께 처분할 수 있으리라는 얕은 계산 속에 내린 결론이었다.

아니, 차라리 슈미츠 공작을 죽인 제론도 죽는 양패구상이 그에게는 최고의 결말이었다.

현 제국의 최고 무위를 자랑하는 그가 이 단기전에 명예로운 죽음을 안게 된다면 황위에 오른 후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그의 세력을 견제하기도 쉬울 테니까. 

이윽고 계산을 마친 이황자가 금세 표정을 바꾸며 근엄히 말했다.

 

"제론 기사단장은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

 

이미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던 제론은 다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좋다. 그렇다면 내가 이 결투의 입회자로 참관하도록 하지."

 

이황자에게 '명분'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 제론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이 목적이었는가."

 

그제서야 제론의 계획을 간파한 슈미츠 공작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허나 그것을 제론이 간단히 답해줄 이유는 없었다.

 

"감히, 삼황자 저하께 유언을 남기고자 합니다."

 

"허락한다."

 

이황자의 허가를 받은 제론은 비틀거리며 삼황자를 향해 다가갔고, 그런 제론을 붉은 눈시울로 반긴 삼황자가 품 속에서 포션을 꺼냈다.

허나 그 포션을 한 손으로 밀어낸 제론은 안기듯 삼황자에게 기대 귓속말을 시작했고, 제론의 말이 이어짐에 따라 삼황자의 눈은 놀람, 경악, 이어 체념의 빛을 띠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이윽고 눈물을 참지 못한 삼황자가 말없이 흐느끼기 시작하자, 제론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반드시, 찾고 말겠다."

 

삼황자의 잠긴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서야, 제론은 다시 슈미츠 공작의 앞에 설 수 있었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미건조한 대화.

제론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가 꺼려지는 것인지, 슈미츠 공작은 계속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무엇이 유감스러운가?"

 

"이 세계가, 전쟁을 통해 성장하는 현세의 잔혹함이 유감스럽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인재를 잃겠구나."

 

"후후, 과도한 칭찬이십니다."

 

결국 마지못해 검에 오러 블레이드를 불어넣은 슈미츠 공작.

그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음을 본 제론의 눈시울 역시 살짝 붉어졌다.

허나 그의 눈가에 떨어질 눈물 한 방울은, 끝내 삼황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그럼, 먼저 들어오시게."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숙연해진 전장의 한가운데, 두 명의 기사는 서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탓하는 것으로 애써 서로를 자위하였고────

 

 

 

이황자는 황위에 성공적으로 안착, 세계는 역사상 열두번째의 그랜드 마스터가 그란트 제국에 나타났음을 공표했다.

  • profile
    Octa 2014.07.26 06:45
    프롤로근가요...
    역시 소설게시판엔 프롤로그가 가장 많은 것 같네요 ㅋㅋ
  • ?
    개소실 2014.07.26 08:06
    원래의 비축본은 다 폰에 있으니, 이런 거라도 써야죠. 흙.
  • profile
    Just 2014.07.27 01:49
    확실히 다른 사람들이랑은 클라스가 다르네요.
  • ?
    개소실 2014.07.27 06:02
    주로 안 좋은 쪽으로!
    특히 폰 관련.
  • profile
    Octa 2014.07.31 04:07
    그 다른 사람들이.. 우리같은 떨거지들이려나요..? ㅋㅋ..

누군가가 채팅방에서 당신을 호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