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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건조한 소리가 넓은 영주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카펫조차 없이 밋밋한 복도의 바닥에 튕겨 메아리를 흘린다.

 

"영주님, 저 레이라예요."

 

뒤를 이은 쾌활한 목소리가 낡은 나무문을 지나 딱딱한 나무의자에 반쯤 걸터앉아 있던, 주황색 머리칼의 남성의 귀에 닿는다.

씨익, 말려 올라가는 남성의 입꼬리.

음흉히도, 사악하게도 보이지 않는 깔끔한 미소가 그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들어와."

 

끼이이─────

남성이 습관적으로 귀걸이를 매만지던 손을 뗌과 동시에 기괴한 소리를 내며 열린 문틈 사이로 하녀복의 하얀 소매와 예쁘지도, 흉하지도 않은 자그마한 손이 보인다.

그 손을 본 남성의 미소가 더더욱 진해진다.

따뜻한, 인정 많은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따뜻한 미소.

그 미소를 단 1초라도 직접 대면해 보았다면, 필시 그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었을지라도 없던 호감이 무럭무럭 피어올랐으리라.

물론, 레이라의 잘 정돈된 갈색 머리칼이 문틈 사이로 빼꼼 드러난 그 찰나의 순간에 언제 미소를 지었냐는 듯 표정을 고치는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남성의 그런 미소를 우연히라도 본 사람은 없었던 것 같지만 말이다.

 

"우와, 서류로 탑을 만들었네요! 이게 다 이번 주 분량인가요?"

 

경첩이 애매하게 비틀려 꽤 힘을 줘 열어야 하는 사무실의 문을 가까스로 닫은 레이라가 호들갑을 떨며 묻자, 남성이 짐짓 서류에 집중하는 척하며 무뚝뚝하게 답한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오늘친데."

 

"으엑! 차라리 하녀 일이 더 낫겠네요."

 

진저리치며 책상 위에 찻잔과 주전자가 담긴 쟁반을 올려놓는 레이라의 모습을 곁눈으로 흘끗 바라보더니, 남성이 입에 다시 미소가 피어오른다.

물론 처음의 그 미소보다야 덜한 면이 없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레이라를 위하는 남성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지 쉽게 유추해볼 수 있는 미소다.

'작은 미소'를 레이라 몰래 지어보인 남성이 다시 냉혈인(冷血人) 연기를 위해 무뚝뚝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저 빌어먹을 문을 열고 들어오다니, 대체 얼마나 큰 일을 가지고 왔길래' 하고 생각했더니. 보니까 여유가 넘치나 봐? 하녀 일이 정말 쉬워서 그런 건가?"

 

마지막 말은 지금까지의 그답지 않게 장난기도 약간 섞어 혼잣말하듯 가볍게 중얼거린 것이었지만, 불행히도 레이라의 귀에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영주의 질책처럼 들린 듯하다.

 

"히이이! 죄송해요! 딱히 별 일도 없는데 멋대로 들어와서 죄송해요! 시키지도 않으셨던 홍차, 멋대로 끓여와서 정말 죄송해요오오오!"

 

"…농담이야. 누가 들으면 내가 사소한 걸로 하녀들 죽이는 변태로 여길라."

 

레이라의 머리를 아무렇게나 헝클어놓고는, 남성은 처음으로 무심한 표정을 풀며 그녀에게 미소를 보인다.

아까의 따뜻한 미소는 아니지만, 그래도 확실히 호감을 사기에는 손색 없는 완벽한 미남의 미소다.

 

 "홍차라……., 나쁘진 않지."

 

갑자기 온화한 표정을 짓는 남성의 눈치를 살피며 재빨리 머리를 다듬은 레이라가 조심스럽게 찻주전자를 기울여 찻잔에 물을 채우자, 남성이 중얼거린다.

지난 황위찬탈전에서 주군을 잃은 후로부터 얼마나 자신을 험하게 굴렸는지, 남성은 잘 알고 있었다.

제론 기사단의 부단장, 카녹스.

그것이 지난 4년 동안 이 조그마한 슈미츠 공국의 남작령에서 살아온 남성의 이름인 것이다.

 

'아직도 내게 여유를 부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자신의 삶마저 황자를 위해 바친 단장의 수하였던 그다.

그런 그에게 있어 단장은 목숨을 바쳐 존경함이 마땅한 존재로 여겨졌고, 그것은 4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있어 그 정도로 절대적인 존재인 단장의 명을 받았음에도 무려 4년씩이나 허송세월을 보낸 셈인데, 어찌 낙천적인 그라고 마냥 여유롭게 영주 놀음을 즐길 생각만 하겠는가.

그렇기에 영지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어느 정도 여유를 찾기 위해, 그 때 단장이 마지막으로 명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그는 다소 심하게 자신을 채찍질해왔다.

여유는커녕 일에 빠져 주위의 사람들을 살피지 못하는 일이 잦았고, 그 덕에 그의 곁에 어린 하녀인 레이라 하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도, 그런 거사를 치르기 위한 시간을 버는 데에 쓸데없이 심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

 

마침 그도 예상외로 어마어마한 일의 양에 질려있던 참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오늘은 쉬어 버리자.'

 

카녹스가 그렇게 결론을 내릴 즈음, 타지의 영주는커녕 일개 농민조차도 누리는 여유를 조금도 생각할 겨를 없이 이 조그마한 영지를 위해 계속 일만 해온 영주가 계속 신경쓰였던 레이라는 주저주저하다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요새 날씨도 좋아졌는데. 영주님도 그렇게 방안에만 틀어박혀 계시지 말고 산책이라도 하시는 게 어때요?"

 

"응?"

 

카녹스의 눈이 이채를 띠자, 그것이 '주인에게 감히 대드는 하녀를 향한 경고'로 받아들인 레이라가 벌벌 떨며 무릎을 꿇는다.

 

"흐아아! 죄송해요! 죄송해요! 하녀 주제에 영주님께 대들어서 죄송해요! 제발 죽이지만 말아주세요오오!"

 

"…아니, 언제나 그랬지만. 너……, 너무 겁 많은 거 아냐?"

 

"죄, 죄송해요! 한 영주성의 하녀라는 사람이 쓸데없이 겁 많아서 죄송해요! 영주님 발목이나 잡는 하찮은 여식이라 죄송해……!"

 

"하아……. 됐어, 됐어. 내가 그렇게 무서워 보였나? 여튼 미안하다, 함부로 겁이나 주는 영주라."

 

한숨을 내쉬며 다 포기했다는 듯 찻잔을 기울이는 카녹스.

쉴 생각도 하고 있겠다, 딱히 따로 볼 일도 없었겠다 해서 기분 좋게 영지민들의 삶이나 둘러보고 올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자신의 생각과 같은 충고를 해 주는 레이라가 내심 맘에 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멋대로 두려워하고 거리를 두려 하니, 그야말로 곁에 있어도 함께할 수 없는 상대를 보는 것만 같은 느낌에 무심코 씁쓸한 감정을 비친 것.

그런 카녹스의 속마음까지는 몰라도 씁쓸한 표정만은 용케도 읽어낸 레이라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린다.

 

"…하다못해 웃어 주세요."

 

"응? 뭐라고?"

 

카녹스의 질문에 당황한 레이라.

 

"아, 아니예요! 아무것도."

 

두 손을 흔들며 대답을 어물쩍 흘려넘기고는 곧바로 시선을 돌린다.

그런 레이라의 행동에는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이 역력히 드러나 있으나, 정작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카녹스는 그런가 보다 하고 대충 넘겨버리는 무심함을 보일 뿐이다.

 

"흠, 산책인가……."

 

이미 카녹스의 머릿속은 좋은 날씨, 영지민들의 후덕한 인상,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과 그 이익을 얻기 위해 끝내야 할 일의 양, 결과적으로 그만큼의 일을 끝내야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따지기 위한 저울질이 끝나 있던 참.

 

"네, 산책이요. 마침 식재료가 다 떨어져서 인근 시장에 들러야 하는데, 혹시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함께……."

 

그리고 레이라의 사심 가득인 제안에, 단 한 번도 여성과의 접점이 없었던 솔로(?) 카녹스의 머릿속 천칭은 너무나도 간단히 한 쪽으로 기울고 만다.

 

"좋아! 가보도록 할까!"

 

그 말을 끝으로 조그마한 남작령의 영주와 그의 유일한 측근이자 하녀는 각자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이 세계의 부당한 규칙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그 소년'과 이 세계의 부당한 규칙에 순응해 희생을 자처한 '그 기사'의 첫 만남을 빚어낸─── 어찌 보면 너무나도 평범하여 아무도 눈치챌 수 없을 것만 같은 '운명의 굴레'의 주인공들이 각자의 자리로 향하는, 그 첫 발자국은 이렇게 간단히 내딛어진 것이다.

  • profile
    Octa 2014.08.02 02:56
    뭐지.. 이 간단해보이면서 읽기 어려운 소설은... ?
    내가 멍청한거려나.. 요즘 너무 폰만봤나보다..;
    아아.. 근데 당분간 글 안쓰신다고 하신것같은데..
    버틸수가 없으셨나봐요...??
  • ?
    개소실 2014.08.02 05:36
    지금까지 올렸던 글 분량들은 전부 폰 안에 있었으니, 시간때우기 용으로 컴으로 쓰는 거져 뭐.

    한 작품을 내지 못하면 다른 작품을 내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 profile
    Octa 2014.08.02 06:37
    우오오오ㅗㅇ 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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