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03 23:00

[개소실]엘리언 2-1.

조회 수 798 추천 수 0 댓글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아, 안녕하십니까.
새삼스럽게 자기소개를 해 보려 합니다.
제 이름은 카논.
풀 네임은 카논─드메르지만, 이 세계에선 '카논'으로 불리고 있어서 그걸 그대로 이름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 '지구'라는 행성의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오게 된 것도 벌써 세 달 전의 이야기네요.
우와, 만세. 여기서 박수 한 번 쳐 줘야죠. 짝짝짝.
뭐, 이런저런 일을 다 겪고 어찌어찌해서 일단 정착은 성공했습니다.
벌써 지구에서 살게 된 지도 ¼년이나 지났으니, 그 기념으로 제 홈스테이(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의 여관이 아닌, 남의 집에서 묵는 걸 홈스테이라고 부르더군요)를 도와 준 고마운 사람들을 소개할까 해서 이 더럽게 어색한 말투를 써먹고 있는 중이랍니다.
자, 계속 이런 쓰잘데기 없는 잡담만 하다가는 안 그래도 더러움이 상당히 크게 압축된 기분이 공간을 굴절시켜 미니 블랙홀처럼 뇌세포를 다 빨아먹을 것만 같으니까 빨리빨리 진행하도록 하죠.



귀찮기도 하고, 남자가 이딴 말투 해도 심신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 같으니까 일단 내 방식의 말투를 다시 사용하기로 했다.
여튼, 소개......라고나 할까, 결론은 이 세계에서의 내 일상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알려주겠다는 말이니 그리 신경쓰지 않길 바란다.
그럼, 시작해 볼까.

아침 6시에 눈을 뜨면, 언제나 비싸보이는 샹들리에가 내 뿌연 시야에 잡혀 심기를 어지럽힌다.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옆을 보면 '귀엽다'라는 듯한(지구의 여자들, 그들의 미적 감각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직까지도 말이다) 인형들에 둘러싸인,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생머리의 소녀가 곤히 잠들어 있는 게 보인다.
이 소녀─── 미아를 깨우는 것이, 내 새로운 일상의 시작이다.

"야, 일어나."

톡톡, 매끈한 슬라임처럼 탄력 있는 고운 피부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미아를 깨우면, 미아는 기다렸다는 듯 눈을 작게 뜨며 내 손가락을 붙잡는다.

"...5분만."

잠에 취한 목소리로 웅얼거린 미아가 다시 눈을 감으면, 첫 번째 스킬인 '엄마 5분만 더요'를 시전한다는 뜻.
즉 다른 방식의 공격을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단 기지개를 크게 켜는 것으로 내 나름의 아침 맞이를 하고, 목을 잡은 채 고개를 몇 번 돌려 목 근육을 부드럽게 한다.
좋아, 필살기 준비 끝.
차가운 맨바닥을 밟고 싶은 마음은 없기에 이불에서 두 발을 빼내 바닥을 살짝 훑는다.
아, 슬리퍼가 여기 있구나.
흰 토끼 모형이 붙어있는 슬리퍼를 대충 신고, 원고지가 그득히 쌓인 책상을 지나 커다란 창의 커튼을 걷는다.
촤라랏! 소리와 동시에 갑작스레 빛 속성 공격을 정통으로 받은 미아가 들릴 듯 말 듯한 신음을 흘리며 가녀린 팔로 얼굴을 가린다.
두 번째 스킬, '임시방편으로 눈 가리기'가 시전되었다.
음, 아직은 순조로운 보스 공략.
이제 닫힌 창을 열어제끼는 것으로, 바람 속성 공격을 시도한다.
지구의 '지구온난화'라는 것 때문에 특히 더 차갑다는 쌀쌀한 가을의 아침 바람 공격!
물론 나도 정통으로 찬바람을 맞는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이미 약속이 있었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아우우우......"

얼굴을 찡그리며 이상한 소리를 내뱉은 미아가 결국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쓰면, 드디어 이 보스 레이드도 거의 끝에 도달했다는 뜻.
새삼스레 한숨을 쉬며, 미아를 감싼 부드러운 이불을 한 번에 잡아당긴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최대한 이불을 붙잡고 있던 미아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쉽게 침대를 벗어난 이불.

"우아아......"

분홍색 잠옷 차림의 미아가 몸을 배배 꼬며 빛을 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정말 절로 나오게 된다.
이런 한심한 일을 한두번 겪는 것도 아니다 보니 이젠 '한숨이 나올 타이밍에 딴죽을 걸 정도'로 익숙해지고 말았다.

"...네가 좀비냐."

"으우우...... 카논, 심술쟁이."

이렇게 미아의 검은 눈동자가 눈꺼풀을 벗고 아침 햇살을 만나면 내 첫 번째 일과는 완료인 셈이다.
잠이 아직 덜 깬 건지 눈을 비비는 미아의 이마를 손끝으로 살짝 찌른다.
날 힘들게 한 복수다, 에잇.

"오늘은 월요일이니까, 일찍 일어나야지."

"그래도오...... 조금, 아주 쪼오오금쯤은 괜찮잖아......"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리는 미아.
네가 무슨 엄마한테 사탕 뺏긴 어린애냐.

"투정부리지 마셔요. 내일부턴 아예 안 깨워주는 수가 있다?"

"그건 싫어."

우와, 즉답.

"왜? 자명종이라든가, 나보다 덜 귀찮게 하는 것들은 많잖아."

"하지만...... 카논이 아니면 싫은걸."

음, 기뻐해야 하나.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귀찮을 뿐인데요......

"그럼 적어도 침대라도 따로 쓰자고......"

머쓱함에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리자, 미아가 갑자기 내 눈 바로 앞으로 새끼손가락을 들이민다.

"계약, 잊었어?"

'계약', 내가 이 집에 사는 조건으로 미아와 한 일종의 약속이다.
덕에 별 어려움 없이 미아의 개인집사라는 명목으로 이 집에서 살게 되긴 했지만......

"안 잊었네요. 계약 조건 제 5, 매일 아침 미아의 기상을 책임진다. 결국 아침마다 널 깨워주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라는 말 아냐. 굳이 같은 침대에서 잘 이유는......"

"말고!"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열 손가락을 모두 펼쳐보이는 미아.

"계약 조건 제 10...? 미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행위는 일절 금한다. 단, 허가를 받기 위한 발언은 일정 한도 내에서 허용한다, 였나...... 아니아니 잠깐, 잠깐만. 다른 침대에서 자는 게 네 심기까지 건드리는 짓이야?!"

전 오히려 이 세계에서 남녀가 같은 침대를 쓰면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최대한 삼가는 편이 좋다고 들었는데요?!
아니, 그 전에 인간이라면 지켜야 하는 기초적인 매너가 각방 쓰기라고 들었는데!

"응."

긍정해버렸다! 거기다 즉답!

"...응, 그래. 내가 말실수를 한 것 같아. 미안하게 됐네."

마음 속으로는 하고 싶은 말들이 산더미처럼 많지만(주로 성관념과 기초적인 에티켓에 대한), 내게 있어 사실상 미아의 말은 절대적이니 일단은 미아의 말에 맞춰주기로 한다.
젠장, 이게 갑의 횡포라는 건가.
뭐랄까,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관념들을 전부 부정당하는 기분이야......

"그러니까 쭈욱, 같이 자. 응?"

...의도한 뜻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위험한 발언인 걸로 아는데, 그거.

'다시 자고 싶다......'

뭐랄까, 역시 이 녀석이랑 말을 섞으면 나만 더 피곤해지는 것 같다.



기지개라도 펴는 듯 두 팔을 쭉 벌린 미아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한다.

"먼저 씻고 있을 테니까, 이불 똑바로 개 놓고."

"우웅."

콧소리인지 대답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소리를 뱉어내는 미아를 뒤로 하고 방문을 연다.
언제나 그래왔듯, 화려한 문양의 카펫이 깔려 있는 복도의 끝에서부터 걸어오는 한 여성.
메이라고 했나, 자신의 주인인 미아 아가씨를 항시 곁에서 보살피는 하인같은 존재라는 듯하다.
왜 하인'같은 존재'라고 하냐고?
처음에 '하인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엄청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보면서 '메이드입니다.' 라고 대답했거든.
그 눈빛이 분노한 드래곤의 그것과 완전 똑같았기에, 압도적인 공포를 겪은 그 날 이후 메이 씨 앞에서는 최대한 하인이란 단어는 피하고 있다.
내게 있어 상대하기 가장 힘든, 그야말로 이 저택의 '라스트 보스' 같은 존재기도 하고, 여튼 뭔가 대화하는 것마저 꺼려지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메이 씨가 막 방문을 닫은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끈적한 밤 잘 보내셨습니까, 카논 님."

"평범하게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는 안 되는 겁니까?"

오늘 처음 보자마자 하는 말이 그거라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이 여자.

"어머, 아직도 아가씨의 정조를 신경쓰시는 건가요? 정말 수컷이 맞는지, 스틱은 있는지 의심될 정도네요."

"여자가 스틱 같은 소릴 남자 앞에서 해도 되는 건가요......"

"네, 전 여자이기 이전에 아가씨를 배필하는 존재인 걸요."

그럼 그 주인의 정조를 지키라고요, 메이 씨.
괜히 애먼 사람 부추기지 말고.

"그 동태 눈깔처럼 썩은 눈빛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뻔히 보이네요. 아가씨의 것뿐만 아니라 제 것까지 동시에 범하고 싶으시다니...... 영원한 초식동물이신 줄 알았더니 처음 암컷을 본 숫망아지처럼 미쳐 날뛸 인물이셨군요."

"그런 생각 전혀 안 했는데요?! 아니, 당신 그냥 날 변태취급 하고 싶은 거지!"

그보다 내 눈, 그렇게 썩어보였어?!
여기로 와서 나름 변했다 생각했는데!

"훗, 재밌는 분이시네요. 늙은 시녀의 오지랖에 이렇게 격하게 반응하실 줄이야."

"전엔 언제나 스물다섯의 초절정미녀 메이드라면서요......"

한숨이 다시 새어나온다.
주인이나 메이드나 표정 변화는 거의 없는 주제에, 생각은 비범하기 짝이 없으니.
정신 상태가 멀쩡한 축에 속하는 난 누구에게든 이리저리 휘둘릴 뿐이다.
하루에 다섯 번 정도는 '괜히 들어왔어' 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할 정도라니까.

"그것보다 미아 좀 부탁드릴게요. 어차피 그러려고 오신 거겠지만......"

메이 씨가 방문을 쉽게 열 수 있도록 옆으로 피해주었음에도, 메이 씨는 금방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성심성의껏 답해준다.

"어머나, 누가 들으면 제가 매일 아침마다 아가씨의 방에 잠입해 이상한 일이라도 꾸미는 줄 알겠네요. 제가 그렇게 오해받기를 원하시나요?"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리라고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여튼 그런 오해를 살 가능성은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할 테니 이상한 말 마시죠. 것보다, 미아 때문에 오신 게 아니면 왜 오신 건데요?"

"이런저런 일들로 온갖 체액에 절었을 아가씨의 잠옷을 강제로 벗기기 위해 왔죠."

"미아 잠옷이 체액에 절 일은 조금도 없었고! 그보다 벗기러만 온 거냐고!"

메이드라며!
메이드답게 좀 말하라고, 젠장!

"오늘도 활기찬 딴죽 감사합니다. 그럼......"

만족했다는 듯 옅은 미소를 보이며 메이 씨가 고개를 숙인다.
'오늘도'...... 인가.
그럼 다음도 있겠......지, 역시.

"하하......"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온다.
완전히 피폐해진 정신 덕에 비틀거리는 몸을 애써 가누며 끝이 없어보이는 복도를 걷는다.
역시, 다시 자고 싶어......
  • profile
    Octa 2014.07.04 15:16
    ㄷㄷ...
  • ?
    개소실 2014.07.05 03:01
    필체를 바꿔 봤습니다 헿.
  • profile
    Octa 2014.07.05 04:34
    어엇.. 저도 이번에 쓸 소설은 묘사방식을 바꿔봤는대, 어떨진 모르겠네요. ㅋ...
  • ?
    개소실 2014.07.06 22:05
    어떤 방식이든 뭐... 보기에만 편하면 될 테니까요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1 [개소실]엘리언 2-2. 2 개소실 2014.07.13 954
» [개소실]엘리언 2-1. 4 개소실 2014.07.03 798
129 [소영소 연애 소설 예고편] 영민이랑 같은 반이 됬어요. 5 소영소닝 2014.06.28 1240
128 [곧별] 습조각 2 곧별 2014.06.27 812
127 [공포,잔인,실화] 3. 하수구 덮개 YSWBJGeCool 2014.06.26 1524
126 [공포,잔인,실화] 2. 시체 닦는 일 YSWBJGeCool 2014.06.25 2266
125 [공포,잔인,실화] 1. 마네킹 2 YSWBJGeCool 2014.06.24 1252
124 [개소실]엘리언 Pro. 5 개소실 2014.06.21 1581
123 [개소실]심심해서 싸질러본 실험글. 3 개소실 2014.06.20 2892
122 actually like -6- YSWBJGeCool 2014.06.06 876
121 [토마토의 단편작]자라나는 토마토 8 토마토 2014.05.28 2819
120 [개소실]헤어진 여친이랑 마주침. 8 개소실 2014.05.22 4406
119 애니멀체인지-범편 3 Li쿤♥ 2014.05.19 2257
118 [릴레이] -Infect- 8화 6 Octa 2014.05.15 1269
117 애니멀체인지-이글편 6 Li쿤♥ 2014.05.13 1307
116 [릴레이] -Infect- 6화 YSWBJGeCool 2014.05.12 1773
115 H4N4 3화 YP 2014.05.10 400
114 H4N4 2화 3 YP 2014.05.08 402
113 애니멀체인지-아리편 11 Li쿤♥ 2014.05.07 486
112 다크한 습작이 이제부턴 정식 연재로 변경될... 걸요? 20 개소실 2014.05.03 74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
누군가가 채팅방에서 당신을 호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