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13 01:12

[개소실]엘리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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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샤워를 끝내고 3층의 내 방(내 방은 따로 있는데 왜 잠은 남의 방에서 자야 하는 건지, 원)으로 올라가 교복을 챙겨입고 다시 계단으로 향한다.
지난 3개월 동안 이 저택 안을 헤멨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 이젠 지도 없이도 중요한 몇 군데는 찾아다닐 수 있게 됐다.
역시 부잣집, 집도 엄청 크다니까.
처음엔 대단한 지위층의 저택인 줄 알고 미아를 귀족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그나마 이젠 메이 씨 덕에 이 세계에 귀족이 없다는 걸 알게 됐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카논."

마차도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넓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2층에 있던 미아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온다.
일 하나는 확실히, 빠르게 처리하는 메이 씨의 실력이라면 이미 미아는 식당에 가 있어야 할 텐데.
음, 또 날 기다리겠다고 억지라도 썼나 보다.

"그렇게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니까......"

은근 메이 씨한테 빚지는 기분이란 말야.
지금까지의 빚 전부 갚으라면서 콩팥 같은 거라도 요구할 것 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고.
메이 씨라면 정말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렇게 말할 것 같다, 응.

"으응."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젓는 미아.

"나, 참......"

난감한 마음에 뒷통수를 긁적인다.
무슨 엄마 따라다니는 어린애도 아니고, 왜 이리 달라붙는지 알 수가 없으니 말 그대로 난감할 따름이다.

"안 가?"

옷깃을 잡으며 내게 말을 걸어오는 미아의 무표정한 얼굴을 본다.
미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차가움마저 느껴지는 인상.
친어머니의 재혼으로 이 집에 온 이래 지금까지 조금도 웃는 얼굴을 보인 적이 없다고 했던 메이 씨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미아 아가씨는 사실 주인님의 양녀이십니다. 사모님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혈육이셨죠.]

지금의 미아 아버지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의 소유주라는 조갑웅 회장이 임신한 아내를 사고로 잃은 것은 8년 전, 그리고 미아의 어머니와 만나 재혼을 결정한 것은 7년 하고도 몇 달 전의 일이라고 메이 씨는 말했다.

[그 때의 미아 아가씨와 사모님은 몸이 건강하신 편은 아니셨습니다. 특히 맨몸을 보이시길 극도로 꺼려하셔서, 목욕 시중은 한사코 거절하셨어요.]

그런 미아와 미아의 어머니를 걱정한 조갑웅 회장은 그 둘을 외국의 유명한 병원에 입원시켰고, 중요한 회의도 미룰 정도로 지극정성을 보였다.
그런 회장의 마음에 하늘도 반응한 것인지 두 모녀는 두어 번의 큰 수술을 견뎌내는 데 성공했고, 빠른 속도로 건강을 되찾아 한 주도 지나지 않아 며칠 간의 재활치료를 거치기만 하면 퇴원을 고려해볼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된 모습을 보였다.
기적에 가까운 수술 결과와 빠르게 혈색을 찾아가는 둘의 모습에 조갑웅 회장이 눈물을 흘렸을 정도라 하니, 당사자였던 둘의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
허나 그 때쯤이었다, 미아의 어머니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 것은.

[사인은 심장 정지, 사유는 불명. 당시 의사들은 결국 사모님의 특이한 면역계가 지금까지 발견된 적 없던 희귀병을 유발해 사망한 것이라고 결론내렸어요.]

발작을 일으킨 미아의 어머니는 곧장 응급실로 실려갔음에도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고, 조갑웅 회장은 병원장의 멱살을 붙잡고 오열했다.
허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세상에 드러난 적 없던 병으로 갑자기 사망한 미아의 어머니가 그런다고 돌아올 리는 없었다.
결국 혼자 병원을 퇴원한 미아는 시커먼 관이 병원 근처의 공동묘지에 묻히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어머니를 보내야 했다.
그 이후, 미아의 입은 영영 열리지 않았다.

[며칠 간은 물도 입에 대지 않으셨고, 틈만 나면 쇠붙이로 자해를 하시는 바람에 옷에 피가 배지 않는 날이 없었죠. 자해를 그만두신 건 불과 2년 전이고, 그 이후에도 아가씨의 입은 열리질 않았어요.]

'......'

처음으로 씁쓸한 웃음을 보이며, 그 때의 메이 씨는 말했다.
그녀는 아직도 작은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어둠을 숨기고 있다고.
그리고, 그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이 될 순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그 아가씨의 어둠까지, 죄송하지만 모두 잘 부탁드린다고.

"카논...?"

미아의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돌아온다.
보니, 미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소매를 잡아당기고 있다.

"아, 미안미안. 잠시 생각 좀 하느라고."

그렇게 말하며 계단으로 내려가려니, 미아가 멈춰선 채 소매를 잡은 손에 힘을 준다.
그 덕에 걸음을 멈춘 내가 돌아보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미아가 중얼거린다.

"...그러지 마."

"응...?"

무슨 말인지 몰라 멍하게 미아를 바라보고 있자니, 미아의 조그만 목소리가 이어진다.

"엄마도...... 종종, 그랬단 말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
내 얼굴이 살짝 굳은 게 보였는지, 고개를 푹 숙인 미아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무서워, 그러니까......"

카논도 갑자기 떠날 것 같으니까, 그런 식으로 멍하게 있지 말아줘.
날 더 이상 무섭게 만들지 말아줘.
그런 말을 직접 하진 않았지만, 미아는 분명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리라.

"아......"

무언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어 버린다.
내 소매를 잡은 미아의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게 느껴지기에.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트라우마.
내게서 미약하게나마 그것을 느낀 미아는 지금 얼마나 큰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걸까.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람을 한순간에 이렇게 약하게 만들 정도의 두려움, 그 무게를 미아는 어떻게 버텨온 걸까.
아주 오랜 시간동안 홀로 숨겨왔던 진심, 속마음.
그 어둡고 무거운 짐을, 나란 놈이 과연 보듬어줄 수는 있는 걸까.
이미 한 번 '기대를 배신해 버려진' 내가─────
미아의 고통을, 나눠받을 가치가 있기는 한 걸까.

"......"

떨리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소매가 구겨질 정도로 세게 쥔 미아의 새하얀 주먹은 너무 작고 약해 보여서, 안쓰러움마저 느껴진다.
말을 하고 있진 않지만, 미아는 내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게서가 아니면 찾을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미아는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것만은 잘 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모르고 있다.
미아가 내게서 원하는 그 '무언가'를.
미아의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줄, 그 '무언가'를.
그래서다, 내가 난감한 건.
미아가 찾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정도의 가치가 내게 있는지 모르기에, 나는 '두려울 정도로' 난감하다.
내게 정녕 그 무언가가 없다면, 난 미아에게 도움이 될 수 없을 뿐더러 큰 실망과 함께 더 무거워진 어둠을 떠안길 수밖에 없기에.
그리고 내가 무가치하다는 걸 알게 되면─────
나는, 또다시 버려질 것이기에.
'그 때의 일'이, 다시 이 세계에서 재현되리란 걸 알고 있기에.



"───걱정 마."

오른손을 뻗어 가슴께에 닿는 미아의 머리를 살짝 끌어당긴다.
달콤한 향기와 함께 미아의 머리가 내 가슴에 닿는다.
흠칫, 놀란 듯 몸을 살짝 떠는 미아의 귀에 대고 조그맣게 속삭여준다.

"난 여기에 있어. 어디에도 가지 않아. 괜찮아, 괜찮아......"

손에 감겨오는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마치 주문을 걸듯, 같은 말을 끝없이 반복한다.
미아의 주먹이 서서히 풀리고, 구겨진 소매가 자유를 되찾을 때까지.
그녀가 듣고 싶었을, 하지만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절실히 원하는 대답을────
그녀에게, 동시에 내게 속삭여준다.

"......"

미아는 말이 없다.
대신, 고개를 숙인 모습 그대로 내 가슴에 안겨있을 뿐.
미약하지만 따스한 체온이 셔츠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진다.
머리는 더 복잡해졌건만, 이상하게 마음은 착 가라앉는다.
겁에 질린 미아에게서 나를 보았기 때문일까.
다른 환경, 다른 상황에 놓여 있지만 어딘가 많이 닮은 미아와 나.
다만 나는 이미 끝장난 녀석이라지만, 미아는 아니라는 게 결정적인 차이라면 차이겠지.
내겐 아무도 없었지만, 미아의 곁에는 내가 있다.
지켜봐주고 걱정해주면서도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아닌────
공감해주고, 항상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자, 가자."

그러니까, 내가 되어줄 거다.
최대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도록 노력할 거다.
세상에게 버려지는 아픔을 겪는 건 나 한 놈으로도 충분하니까.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짓눌리는 건 나 하나로도 족하니까, 그러니까.
그만큼의 어둠이라도, 내가 대신 짊어지고 가주마.

"...응."

미아가 고개를 든다.
눈시울이 살짝 붉어져 있는 게 보인다.
그래도 전체적인 표정은 밝아져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빙긋 웃어보이며 머리를 쓰다듬던 오른손을 내려 미아의 손을 잡아준다.
손이 잡히자 약간 주저하는 듯하던 미아가 손아귀에 힘을 준다.
윽, 이건 좀 센데.

"다시는 그러지 마."

"그래, 그래."

배고프다며 나보다 앞서 걸어가는 미아의 뒷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진다.
웃지 않는 얼굴, 감정을 느낄 줄 모르는 얼굴.
그 얼굴이 옛날의 나와 너무 닮게 여겨져서인가.
시선이 자연스레 내 손을 잡아끄는 미아의 손으로 향한다.
부드러우면서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허나 너무 약해서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은 손.
이 손을 맞잡기 위해, 난 여기에 오게 된 걸지도 모른다는 바보같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래, 목표가 생겼다.
이 세상에서 가진, 내 생애 최초의 목표.
날 필요로 해주는 이 아이에게 웃음을 되찾아주는 것.
그게 신에게 버려진 아이를 위한, 세상에게 버려진 이방인─엘리언(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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