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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 …어 ……한 …………요.]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
놓지 마, 놓으면 내가 정말 견딜 수 없다는 거 알잖아!

[그……까, … …을 …………다 …… 원망…… ……요.]

농담하지 마, ────아!
잠깐, 안 돼!
제발 놓지마, 하지마, 안 돼, 안 된다고!

[안…, ……… ……님. ………………………]

────아! ────아아아아아아!

"─────허억!"

번쩍, 눈이 떠진다.
흰 빛이 점멸하던 시야가 흐릿하게나마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허억, 허억, 허억……."

몸을 일으켜 숨을 거칠게 들이내쉰다.
거칠어진 숨은 어찌해볼 생각도 않은 채 금방이라도 잡힐 것만 같았던 꿈 속의 누군가의 이미지를 떠올려본다.
하지만 미약한 두통만이 느껴질 뿐, 이미지의 실루엣마저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도 실패, 인가…….'

다시 매일 밤마다 찾아오기 시작한 기묘한 꿈.
그 꿈 속의 내가 애타게 부르던 '누군가'의 끊기는 목소리.
그 '누군가'에 대해 떠올릴 때마다 쑤셔오는 머리.
그것들에게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노력해봐도 항상 결과는 같다.
꿈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은 더 새하얘져서, 이젠 포기할까, 같은 생각까지 절로 든다.

"젠장."

괜시리 짜증이 치솟는다.
애꿎은 베개에 주먹을 먹여 본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꿈의 내용이 갑자기 기억나게 될 리도 없고, 무언가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맥이 탁 풀려버린다.

"아아아……."

기성을 내며 그대로 다시 베개에 머리를 파묻는다.
창문을 열고 잔 기억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열려 있는 창문 밖으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순간의 찰나에 눈을 향해 직접 쏟아져내린 햇빛에 당황해 손을 들어 눈을 가린다.

'…날씨 하나는 더럽게 좋네.'

들어올린 손의 틈새 사이로 햇빛이 드나들며 눈을 어지럽힌다.
땀으로 푹 절은 잠옷의 목 부근을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부드럽게 매만져준다.
따스하고도 시원한, 조금 어색한 느낌.
아침의 상쾌함을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요소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피해망상의 일부인지, 죄책감의 연속인지─어쩌면 둘 다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마음 놓고 있을 수 있도록 하는 요소들에는 일종의 거부감 같은 것이 느껴진달까.
그런 이유 때문에, 되도록이면 이런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난 항상 이성을 차갑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 요소를 일부러 피할 수는 없더라도 최대한 휘둘리지 않을 수 있게 말이다.

'쓸데없는 짓인건 알고 있지만.'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새어나온다.
나 자신이 그런 짓들을 무용하다 생각하면서도 무용한 짓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내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 준다 해도 한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는 미치광이처럼, 정신을 과거에 붙박아놓고 어긋난 관점을 고집한 채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을 누가 한심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나는 절대 현재를 직면할 수 없다.
그렇게 하기로 다짐했으니까.
끝없이 길게 펼쳐진 길이 나의 인생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길디긴 길의 종착점은 생각도 않고 뒤만을 돌아볼 것이다.
내가 지켜주지 못했던, 내게 무력감을 일깨워준 나의 여동생───
연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내 유일한 속죄는 그것뿐이니까.

"윤, 일어났니?"

문 건너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씻고 옷 갈아입은 뒤 나와서 식사하라는 말을 네 글자로 줄여버리는 신기를 가진, 하지만 이런 세상에는 둘도 없을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안구 적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모자라 범죄자의 자식으로 낙인찍혔던 나를 양자로 받아준 사람이니까, '이런 세상에 둘도 없을 고마운 사람'으로 불릴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예."

평소와 다름없이 짧은 아침 인사를 내뱉으며 땀에 젖어 찝찝한 느낌을 주던 잠옷을 벗어 대충 개켜둔다.
화장실에 가 대충 얼굴에 물을 묻히다, 문득 거울로 눈을 돌려본다.
뚝, 뚝, 턱선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
너무 길어 눈을 가리는 머리를 쓸어올리고 왼쪽 눈의 안대를 걷어올린다.
머리카락의 그림자가 살짝이나마 가려주던 안대의 접안면(接眼面)이 모습을 드러난다.
눈가에 길게 그어진 일자 흉터가 빛을 받으니 찌릿, 하고 저려오는 불쾌한 감각이 느껴지는 듯하다.
의안 이식 수술을 받지 않아(내가 바란 일이었다) 흉측 그 자체로 남게 된 환부가 '그 때'의 고통을 생생히 보여준다.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안구를 늦게 적출해낸 결과, 남게 된 거무스름해진 눈살 사이의 비어버린 공간이 공허함보다는 거부감을 조성한다.

"우웁…!"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
살아있는 게 더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로 끔찍한 얼굴을 한 채 목적도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지독하게 더러워서.
그럼에도 연이 대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지독하게 싫어서.
살아야만 했던,행복했어야 했던 사람을 데려가는 대신 죽어도 싼, 불행하든 행복하든 상관도 없는 쓰레기를 남겨놓는 '신'이란 존재가 지독하게 증오스러워서.

"우웁, 우워억……."

그래서, 토해낸다.
신을 향한 원망의 소리도, 더러운 세상을 향한 원망의 소리도, 모두 위액과 함께 쏟아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들뿐이라고 끝없이 속삭이는 자책감을 끌어안은 채.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무력한 쓰레기라는 이름표를 머릿속으로 붙여보며.
내 추악함을, 더러움을 토해낸다.

────난, 대체 왜 아직까지도 살고 있는 걸까.



간단하게 샤워를 끝내고 나온 뒤, 옷을 갈아입는다.

'오늘이…… 4월 16일, 화요일.'

시계와 함께 걸려 있는 달력을 보며 오늘 날짜와 요일을 맞춰보고, 책상에 놓여 있던 빨간 펜으로 커다랗게 가위표를 친다.

''그 곳'에 가는 날까지 앞으로 이틀.'

4월 18일에 그려져 있는 동그라미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본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기에.

"아직이야?"

학교 갈 준비 다 끝났으면 어서 나와라, 라는 뜻이다.
역시 한국어, 의미 축약 수준이 장난이 아니군.

"금방 나가요."

간단히 대답해준 후, 소독통에 들어 있던 안대를 꺼내 갈아끼운다.
갑갑한 남색 교복, 밤색 책가방, 뒷머리를 정리해주는 머리끈.
완벽히 준비가 끝났음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하고 나서야 방문을 나선다.
이십 대 후반의 젊은 간호사와 수능까지 약 2년이 남은 고교생이 살기에는 지나치게 큰 집이라 떠들썩하고 훈훈한 느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적막하고 싸늘한 느낌이 더 크다.
지금 걷고 있는 2층 복도의 바닥도 그를 증명해주듯 차갑게 식어 있다.

'봄이 한창인데도 바닥은 차네.'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부엌으로 가니, 전형적인 영국식 아침이 나를 맞이한다.

"앉아, 시간 다 됐잖아."

짧은 보브컷이 잘 어울리는, 나보다도 키가 큰 젊은 여자가 앞치마 차림으로 프라이팬을 가볍게 흔들며 말을 걸어온다.
──이 사람이 나를 구원해준 고마운 사람, 양혜원 누님이다.

"언제나처럼 좋은 타이밍이네요."

알맞게 구워진 베이컨을 내 접시 위에 올려놓아주는 누님에게 인사 겸 가벼운 농담을 한다.
이십 대의 젊은 나이에 양자를 들인 사람의 각오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내게 있어 누님만큼은 어색하게 대하고 싶지 않고, 그렇기에 조금 어울리지 않더라도 가벼운 농담을 하는 정도의 성의는 보이고 있다.
그래야 '잘 자라주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러게. 언제나처럼 늑장이신 누구누구 씨 덕에 말이지. 구첩반상을 차려도 괜찮을 것 같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내 코를 톡톡 건드리는 누님.
언제나 드는 생각이지만, 이렇게 사람 몸 함부로 건드리는 건 조금 자제해주었음 한다.

"잘 먹겠습니다."

"응, 잘 먹어."

계란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입에 넣고, 부드러운 식빵을 한 입 베어문다.
내 기호에 딱 맞는 양, 맛, 조리법.
5년 동안 함께 살았다는 것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순간이다.

"오늘, 울었지?"

미소를 띤 얼굴로 날 뚫어져라 바라보던 누님이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

"운 게 아니라 토한 거예요. 후유증."

눈시울이 아직도 붉었나, 하는 생각에 눈 밑을 살짝 매만지며 대답하자, 누님의 미소가 살짝 옅어진다.

"아직도 남아있는거야? 그 후유증이라는 거. 이상하네, 분명 후유증은 몇 달 지나면 사라지는데……."

누님의 걱정 담긴 말에 괜시리 마음 한 구석이 뜨끔해진다.
확실히 수술은 기적적으로 잘 마무리되었고, 눈 밑 살을 살짝 도려내는 것으로 2차 감염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후유증이라 할 만한 것은 수술이 끝난 이후 며칠간 찾아온 두통과 수술한 환부에서 느껴진 간지럼증뿐이었고, 따라서 이 구토 증세는 절대 수술로 인한 후유증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다.

그럼 거짓말한 거 아니냐고?
나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확실히 후유증이니까.
다만, 외상에 의한 후유증이 아닌 정신적 후유증일 뿐.
날 이토록 괴롭게 만든─────
'그 때'의 충격이, 내게 준 세 번째 잔재다.
  • profile
    Octa 2014.04.25 16:01
    배드엔딩.
    흐흑...
  • ?
    개소실 2014.04.26 01:14
    이번 습작은 연작으로 만들 생각도 있습니다.
    어째 다크하게 쓰니까 다크한 생각이 물밀듯 솟아올라서리...
  • profile
    Octa 2014.04.26 02:02
    여기서 연작을 하시면 엄청나게 다크해질텐데...!!
  • ?
    개소실 2014.04.26 08:24
    뭐, 게임판타지 식으로 갈 거예요.
    다크한 걸 끝까지 다크하게 쓸 생각은 없으요 ㅠ
  • profile
    Octa 2014.12.08 05:40
    오.. 수정됐네요.
    기존과 꽤 많이 달라졌군요.
    잘봤어요~
  • ?
    개소실 2014.12.08 06:10
    언제나 읽어주시는 옥타님께 수퍼 매우 하드코어하게(?) 감사드립니다!
    랄까, 원래 스토리(도 아닌 이상한 것)를 수정해서 좀 더 탄탄히 하는 작업이 이토록 힘들 줄은 몰랐네요 ㅠ

누군가가 채팅방에서 당신을 호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