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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들은 말이 있었다.
'곧 괜찮아질 거야' 라는 부친의 혼잣말.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누워 조그마한 산소 호흡기 하나로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을 건너편의 유리창으로 바라보고 있던 여덟 살의 내게 부친이 한 그 말.
어머니가 전혀 본 적도 없는 기이한 모습으로 유령처럼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던 내게 부친은 부드럽고 중후한 목소리로 그 저주받을 개소리를 처음 중얼거렸다.
그 때의 부친은 누가 뭐라 해도 당당한 나만의 아버지였으며, 친부모가 하는 말에서 진위를 가려내기엔 내 나이는 너무나도 어렸다.
그래서였는지, 나도 그렇게 믿고 싶어서였는지, 난 그 개가 짖는 소리만도 못한 거짓말을 순순히 믿어버리는 최악의 실수를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그것에 대한 대가는 실수에 대한 처벌이 생각하기엔 지나치게 끔찍하고 잔혹해서, 차라리 삶을 포기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윤? 이윤!"

"아……?"

이런, 또 옛날 생각에 멍하니 있었나 보다.
누님의 걱정 담긴 눈길이 부담스럽게 내 얼굴을 훑는다.

"어디 아파? 다른 후유증이 더 있었던 거야?"

"아…… 아뇨, 괜찮아요. 그냥 다른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요."

다가오는 손길을 젓가락을 든 손으로 살짝 밀어내며 답한다.
누님의 찬 손에서부터 드는 서늘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살짝 소름이 돋는다.

"수술한 지 오래 됐더라도 이차 감염의 여지는 충분히 있어. 종합검사 받는 편이 낫지 않을까?"

누님은 아직 내가 걱정되는 듯하다.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하는 누님의 눈을 보니, 조금이나마 걱정을 끼쳐드린 것에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같다.

"괜찮아요. 더 이상 신세를 지고 싶진 않아요."

그래도, 곤란한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
살인자의 아들에서 미혼모의 자식으로, 가만 내버려두면 금방 죽을 고아에서 큰 집서 사는 부잣집 외아들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은혜인데, 이 이상으로 민폐를 끼쳐드릴 수는 없다.
순수한 호의라 해도 절대 사절이다.
'무슨 호의든 그것에 대한 대가는 있기 마련'이니까.
그것이 내가 멋대로 느끼는 일종의 '보상 심리'가 될 수도 있으니까.
차라리 호의에 호의로 답하는 것이라면 상관없지만(오히려 그것이 옳은 것이겠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내 마음을 이용하려 드는 것일 가능성도 있는 만큼 누님을 완전히 믿을 수 있을 때까지는 의심하고 견제할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누님을 볼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누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거든.

"윤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즈음, 누님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린다.
아차 싶어 누님을 다시 마주보니, 누님의 눈이 싸늘하게 식어있다.

"신세라는 말, 쓰지 않기로 했지?"

실수해버렸다.
누님과 했던 약속을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
'절대 신세라는 말은 쓰지 않기'라는, 누님과 나 사이의 약속을.
누님은 병적으로 '신세'라는 말을 싫어한다.
처음에 병실에 누워 처음으로 누님을 뵀을 때 뱉었던 '같잖은 동정은 사절이야' 라는 식의 독설에도 웃어주던 누님이 내게 처음으로 진지하게 화를 냈을 때는 '신세를 졌습니다'라는 말을 내뱉었을 때였다.
그 때의 누님도 지금처럼 흙빛이 된 얼굴로 내 눈을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그런 말, 다시는 내 앞에서 하지 마'라고 쏘아붙였었지.
노려보는 눈빛에 담긴 기운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나도 모르게 바지에 오줌을 지렸었지.

"죄송……해요."

지금도 마찬가지다.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식은땀이 눈에 띄게 흘러 턱밑에 고인다.
마치 범접할 수 없는 사냥꾼을 마주한 어린 토끼가 된 느낌.
사람을 무력하다고 여기게끔 할 수 있는 실로 무시무시한 눈빛이다.

"응, 알았으면 됐어."

다행하게도, 누님은 금세 표정을 풀어주었다.
싱긋 눈웃음을 지어보이는 것을 보고서야 몸의 긴장이 풀린다.
하아, 누님 몰래 한숨을 뱉은 후 식어버린 아침을 대충 입에 구겨넣는다.
평소에는 누구보다도 착하고 여리게 보이는 누님이, 왜 화만 나면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는지.
정말,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고, 오는 길 조심해!"

제가 앱니까, 같은 딴죽을 삼키며 대문을 나선다.
넓게 뻗어진 길, 좌우 형형색색의 담 너머로 이따금씩 모습을 보이는 이름 모를 나무의 가지들, 맞은편의 연립 주택에 주차되어 있는, 주인 모를 먼지 낀 경차 한 대.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은 건지, 상태가 이상한 건지.
평소라면 보지도 않았을 것들로 자꾸 눈이 간다.
4월이 한참이에도 채 사라지지 않은 돌담 밑의 얼음이라든가, 가지와 가지 사이를 돌아다니며 정신없이 울어대는 종류도 모르는 새라든가(참새는 아니다), 혹은────
약간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지름길의 끝자락에 쭈그리고 앉아 날 노려보고 있는 석류빛 눈동자라든가.

"───────어?"

얼빠진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눈동자를 빼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눈동자의 뒤에는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보여야 정상인 넓은 도로변조차도, 심지어 양쪽을 가로막고 있는 높은 벽마저도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하늘은 어느새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고, 주홍빛의 달이 싸늘하게 나를 노려보고 있다.

'뭐야, 이─────'

퍼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생각이 차단된다.
정신을 잃은 건 아닌,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묘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난 어떤 의문도, 저항도 하지 않은 채 눈동자와 마주한다.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는 눈동자를 멍청히 주시한다.
소리 없는 비웃음으로 내 시선에 답한 눈동자가 말을 걸어오기 전까지.

[네가 꾼 최악의 악몽은, 무엇이냐.]

음성 변조기로 심하게 꼬아놓은 듯한 정체불명의 소리가 머리 안에서부터 들려오고, 동시에 머리가 쪼개질 것만 같은 두통이 몰려온다.
환각치고는 너무나도 생생하고 아프다.
마치 누군가가 정말 내 머릿속에 눌러앉아 괴롭히고 있는 듯한, 그런 불편한 느낌.

"………………!"

고통에 몸부림치며 신음을 흘리려다,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설령 길거리 한복판에서 가위에 눌렸다 해도, 이건 정말이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에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나는 대답하고 또 질문한다.

'왜 나지?'

대체 왜 하필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 건가?
내겐 최악의 악몽이란 건 없다.
악몽보다도 지독한 지금을 살고 있으니까.
질문에 대한 대답은 돌아오지도 않고, 고통이 사라지는 일도 없다.
당황, 곤혹, 고통, 의문.
이 모든 것들에 단 1g도 답을 알려주는 일 없이, 서서히 고통은 내 외면의 의식을 잠재우고 내면의 의식을 향해 그 불길한 손을 뻗기 시작한─────



부친은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좋은 일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성향이 강했다.
수술이 아무리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해도 어머니의 암세포가 심장까지 도달하지 않을 리는 없었고, 따라서 아무리 수술을 해 세포를 적출해낸다 해도 임종 시간을 늦추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그 때의 부친은 뼈저리게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곧 괜찮아질 거야, 이번 수술만 잘 되면……."

허나 부친은 그 사실을 필사적으로 외면했고, 어머니의 몸을 난도질하는 데에 동의한다고 적혀 있는 종이쪼가리 위에 미친 듯이 펜을 놀려댔다.
그 결과 부유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던 우리 집은 감당하기 힘든 병원비에 짓눌려 급격히 기울었고, 어머니는 부친이 그 때까지 해왔던 현실 부정을 비웃기라도 하시듯 1년도 채 버티시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부친이 절망과 자책, 자신에 대한 원망에 시달려 폐인처럼 살게 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까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나.
지름길의 출구를 가로막고 서 있던 붉은 눈동자, 모든 것들을 집어삼킬 듯하던 어둠은 사라진 모양이다.

"……아."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는 게, 아까의 그건 순전한 내 착각이었던 듯하다.
살짝 머리가 띵한 것만 빼면 이상한 증세도 없고, 무언가 달라진 점을 찾아보자니 그런 것도 없고.
이만하면 착각으로 치부해도 괜찮을 테지.
그건 그렇고,

''아까의 그거'라는 게, 뭘 말하는 거지……?'

묘한 기분이다.
멀쩡히 등교하고 있다가 뜬금없이 이상한 생각을 하질 않나, 평범한 길목에서 멍청히 서 있질 않나.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것 같다.
왠지 모를 찜찜함에 머리를 긁적이며, 대로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피곤해서 이러는 거겠지.'

학교에서 조금만 쉬면 금방 나을 터, 얼른 가서 잠이나 자자.
그렇게 결정을 내리니, 틀렸다고 말해주기라도 하듯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도망갈 수 없는 무언가에 발이 묶인 것 같은 느낌.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함이 밑바닥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을 애써 억누르며, 자꾸만 무거워지는 발을 보챈다.

────정말이지, 오늘은 안 좋은 일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다.



"상태는?"

분홍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액체가 담긴 와인잔을 앵둣빛 입술에 갖다 대며, 흑발의 여인이 묻는다.
그와 동시에 굉장히 복잡해 보이는 기기를 자신의 오른손마냥 자연스럽게 다루던 보랏빛 머리칼의 여인이 고개를 들며 답한다.

"양호, 오늘 당장이라도 가능할 듯해요. 하지만……."

"하지만?"

액체의 맛을 음미하기라도 하듯 눈을 감은 채 와인잔을 흔드는 여인.
180이 넘을 것만 같은 장신, 길다란 속눈썹, 주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건강한 살굿빛 피부, 어떤 옷으로도 숨길 수 없을 듯한 곡선미가 꼭 미녀의 교본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하다.
통풍이 되는 공간에 있기라도 한 건지, 이따금씩 여인의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려 아름다운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머물러 있는 칠흑의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는 순간에도 순백의 간호사복과 만날 듯 만나지 않는 것이 마치 경계를 사이로 갈라진 두 색의 대립을 연상케 한다.

"언니, 솔직히 전 그 녀석이 맘에 안 들어요. 맹한 데다가 얼굴도 흉측하고 뭐 하나 제대로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떤 식으로든지 써먹을 수 있기는 한 거예요?"

살짝 눈 밑에 드리워진 다크서클을 슥슥 문지르며 말하는 여인 역시 평범한 여성과는 궤를 달리하는 미모를 지니고 있다.
아담한 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길디긴 보랏빛 머리칼, 성인 남성의 손바닥으로도 가릴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얼굴, 당찬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구릿빛 피부, 다크서클로도 가려지지 않는 맑은 옥빛 눈, 오똑한 코.
멜빵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임에도 돋보이는 외모는 흑발의 여인과 비교해 보아도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다만 한 가지, 전에 묘사한 흑발의 여인을 '무엇 하나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미인'이라고 정의한다면, 이 여인의 경우엔 '다 좋은데 한 부위가 안타까운 미인'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단 한 부위만이 평균 이하의 수치를 자랑한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다.

"흠, 얀?"

"네?"

슬쩍 눈을 뜨는 흑발의 여인.
입술보다도 붉은 빛이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자발(紫髮)의 여인─ 얀을 똑바로 주시한다.
약간의 싸늘함이 담겨 있는 그 눈빛에 기가 죽었는지, 얀의 어깨가 살짝 움츠러든다.

"그 분에 대해 그렇게나 조사를 했음에도, 내면에 감춰진 것은 단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나 보군요. 솔직히 방금의 평가가 정식으로 한 보고였다면 크게 실망했을 거예요."

"네에?"

당황한 듯한 반응.
그런 얀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흑발의 여인이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옅은 웃음을 흘린다.

"후후,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앞으로도 알아낼 것이 많다는 뜻. 응원할 테니 계속 힘내주세요."

"네? 어어, 네……."

충격을 받아서인지, 납득이 잘 가지 않지만 일단은 수긍한 건지 모를 애매한 답을 하며 고개를 갸웃이는 얀.
그런 얀의 귀여운 행동에 짙은 미소를 지으며, 여인이 말을 잇는다.

"후후후. 그보다, 해야 할 다른 보고가 있지 않았나요?"

"아, 그렇네요. 이 곳의 시간대로 약 3분 전에 '그들'의 접촉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물론 '그 분'의 뜻대로라면 이것 또한 정해진 수순일 테지만……."

"그럼 맘대로 하게 두세요.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테니까요."

여인이 말을 마치며 와인잔을 비우자, 얀이 다시 복잡해 보이는 기계로 눈을 돌린다.

"그럼, 언제든 우리 쪽에서 출동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두겠습니다."

"고마워요, 얀. 당신을 찾아 얼마나 다행인지."

짧은 감사의 말을 하며 와인잔을 손에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난 여인의 몸이 서서히 사라진다.

"……."

기계의 조종에 집중하고 있어서일까, 답이 없는 얀을 뒤로 한 채 자리를 벗어난 여인이 시를 읊듯 중얼거린 마지막 말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얀에게는 닿지 않았다.

"당신도, 당신의 '그이'도……. '그 분'의 헤아림대로, 이번에는 구원받을 수 있을는지."
  • profile
    Octa 2014.04.26 17:41
    !!!¡¡¡
  • ?
    개소실 2014.04.27 03:05
    역시 작가는 전력의 70~80%만 써야 하나 봅니다.
    학교에서 3편 썼으요.
  • profile
    Octa 2014.12.14 20:16
    특정 부위라뇨.. ㅋㅋ

    내일이 시험인데도 불구하고 폰잡고있네요.
    뭐, 상관 없어요. 고등학교는 이미 합격했으니..
    반배치고사만 보면 되겠죠...
  • ?
    개소실 2014.12.14 20:43
    요새는 우리도 일본처럼 고등학교 지망을 뽑는 게 아니라 합불합을 가리나요...

    여하튼 특정 부윕니다. 많이 안습한 사이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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