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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야……."

대놓고 목소리를 높이면 미친 놈으로 보일 게 뻔하니, 곁눈으로 주위를 살피며 중얼거린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머릿속에 계속 울려대는 누군가의 목소리.
10~20대 여성의 목소리라는 건 알아챈 지 오래지만,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그것도 머릿속에서 울린다는 게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기에 최고조의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뭐가 궁금해? 어디서 내게 말을 거는 거지? 이건 무슨 술수고? 아니, 그 전에 넌 누구냐고."

[어휴, 궁금한 것도 많으셔라. 질문하시느라 힘 빠지게 한 건 죄송하지만, 그 질문들 중 그나마 대답을 드릴 수 있는 질문은 하나밖에 없네요. 게다가 제가 대답하고자 하는 질문도 아니고요.]

별 괴상한 헛소리를 내뱉으며 작게 웃음을 흘리는 여자.
장난치면서 여유를 부리는 그녀의 태도가 정말 맘에 들지 않는다.
자기가 갑이라는 걸 자랑하는 것마냥, 건방지게 사람 말꼬리 잡고 빈정대는 말투가 불쾌감을 조성한다.

"그럼 닥치고 본론이나 씨부려 봐. 대체 내게서 뭘 원하는 건데?"

목소리를 더 낮추고 위협하듯 말해도, 여자는 여유로운 태도를 바꿀 생각도 않는다.
다만, 더 짜증스럽게 말을 빙빙 돌릴 뿐이다.

[여자에게 난폭한 남자는 인기가 없다는 거, 몰라요? 조금 진정하는 편이 더 나을 듯한데.]

"난 지금, 네년의 그 빌어먹을 목소리에 뇌가 유린당하는 기분이야. 엿 같아지려 하니까 본론이나 말하라고."

말하는 꼬락서니가 스트레스를 부르는 게 정말 만날 수만 있다면 주둥이에 주먹이라도 꽂아주고 싶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여자는 더 이상 농담을 건네지 않고 본론을 뱉어낸다.

[으엑, 센스 하고는. 여하튼 당신,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있어요?]

…대신 본론이라는 게 헛소리, 그 자체라 아직도 농담처럼 들린다는 것이 문제지만.

"뭐라는 거야, 미친 것도 아니고."

[미쳤다뇨! 이래뵈도 남자 몇은 가볍게 후리고 다닐 수 있는 순진무구한 미녀라고요!]

"후리고 다니는 시점부터 이미 순진한 게 아니잖…… 이 아니라!"

방심했다.
나도 모르게 열이 확 뻗어올라 여자의 장난질에 반응해버리고 말았다.
내 자신의 한심함이 원망스러워 한숨을 흘리니, 여자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머릿속을 정신없이 울려댄다.

[아하하하하! 조크도 받아들일 줄 모르는 냉혈한으로 자란 줄 알았더니. 꽤 맘에 드는 갭인데요?]

지끈지끈, 머리가 다 쑤신다.
이런 무의미한 대화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 건지, 원.

"갭 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꺼져.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쓸데없는 소리나 지껄이긴."

[쓸데없다니요? '원하는 것'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당신이 그런 식으로 말할 줄은 몰랐는데요.]

뭐라는 거야, 아까부터.
아무래도 이 여자, 사람을 잘못 보고 말을 걸어온 것 같다.
누구든 그런 실수를 한번쯤은 하기 마련이니 이해는 하겠다만…….

'곤란한 일에 말려들어버린 것 같은데.'

하필이면 머릿속으로 직접 자기 말을 때려박는, 공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통신 방법을 이용하는 사람이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그 대상이 지극히 평범한 한 고아원 출신 고교생이라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고.
영화나 소설에서도 극비리에 행해지는 중이던 비상식적인 일을 목격하거나 체험한 '증인'들은 모두 살인멸구당하지 않는가.
이런 비상식적인 능력까지 이용해가면서 전해야 할 '암구' 같은 게 어쩌다 내 머릿속에 전해진 거라면?
자기 자신을 지킬 힘따윈 눈곱만큼도 없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단숨에───

'끝장이다, 이 말이지.'

장난 같은 것에 어울릴 때가 아니었음을 깨닫자 순식간에 긴장감이 온몸을 지배한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행동 하나를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지는 않는지 주위를 곁눈으로 재빨리 둘러본다.
그리고 아마도 날 다른 누군가로 오해한 듯한 이 여자에게는…….

"미안한데, 난 지금 정말 네가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건지 한 마디도 이해가 안 간다고. 방금 말한 시간을 포기하네 뭐네 하는 것들도, 난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거든?"

솔직히 말해 버리자.
어중간하게 아는 척하는 것보다야 속시원히 까고 말해두는 편이 나으니까.
만약 내 머릿속에 알게 모르게 전해진 것이 경쟁 세력들 간의 주요 요소라면, 내가 애매하게 아는 척 다 해 가면서 가지고 있다가 여타 세력의 급습을 당할 가능성도 존재하니까.
차라리 저 쪽에서 요구하는 대로 다 해주고 숨겨진 한 수로서 저 쪽의 편에서 행동할 생각이 있다는 어필을 함으로써 밑밥을 깔아두는 편이 훨씬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내가 순종적이고 비밀을 엄수한다는 사실을 어필하는 편이 그나마 죽음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한 수라는 말이지.'

도박.
그 한마디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짓이다.
조심해서 나쁠 일은 없으니 조금씩, 조금씩 생존률을 높여보자고.

[네? 하아아아, 맞다. 기억이 없다는 걸 까먹었네요. 당신답다면 당신다운 짓이지요, 이것도.]

한심하다는 듯 요란하게 한숨을 내쉬는 여자.
실수한 건 없었을 텐데, 모든 가정을 벗어난 당황스러운 반응이다.

"잠깐, 기억이 없다는 건 무슨 소리야?"

[좋아요. 어차피 시간도 없겠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죠. 당신의 '도움'이 절실해요. 자세한 사항은 당신에게 익숙한 시간으로 내일 오전 두 시, 지금 보내드린 위치에서 말하도록 하죠.]

갑작스러운 두통, 미친 듯 흘러들어오는 정보.
마치 막혀있던 댐의 문을 강제로 열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나의 통제를 벗어난 신경이 정보를 받아들여 빛의 속도로 해석하고, 그 결과를 뇌 속에 박아넣는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정보를 거부하려 들지 마요. 당신의 의지로 저항하려 하면 반발이 일어나 어떤 오류가 발생할지도 모르니까요.]

여자의 말은 그 와중에도 또렷하게 들려온다.

"그렇게 중요한 건 먼저 말하라고……!"

욱신욱신, 점점 더 심해지는 고통.
얇은 막을 두드리는 듯한 아슬아슬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등에 소름이 돋는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 지금 난 무언가를 떠올리는 중이다, 내 기억을 끄집어내는 거야!'

마인드 컨트롤로 어떻게든 무의식적인 저항을 막으려 해도 도움이 되어주진 않는다.
점점 고통은 심해지고,이상한 기억들이 섞여 머리를 엉망으로 만든다.
꿈, 웃고 있는 연이, 얼굴로 날아오는 유리병, 몽환적인 분홍빛 노을 속 맞잡은 손, 시야를 가리는 주먹, 망가진 인형, 울고 있는 연이의 얼굴, 뻗어도 닿지 않는 피웅덩이 속의 새하얀 팔────
입술에 닿는, 누군가의 따스한 입술.

"크으……!"

고통에 겨운 신음을 흘리자마자, 지금까지의 고통은 거짓이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고통이 사라진다.
띵한 정신이 내가 아직 살아있음에 의문을 던지고, 미친 듯 두근대는 심장과 거칠게 내쉬어지는 숨이 긍정한다.
괴랄했던 기억 속에 봤던, 아직 따스함이 남아있는 듯한 입술로 손을 대어본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약해지고, 거칠었던 숨이 안정을 되찾는다.
마법과도 같은 현상에 의아함을 느낄 새도 없이, 어딘가를 향한 약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여긴……?"

기억나는 곳이다.
아니, 기억된 곳이라고 해야 하나.
강제로 '내가 아는 장소'로 각인된 새로운 정보니까.
여하튼, 누님의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그다지 멀지도 않은 폐건물.
땅 주인이 갑작스럽게 죽은 데다가 자식들의 유산 다툼에도 말려들어 공사가 중지된, 주인 잘못 만나 불쌍하게 된 장소, 라고 할 수 있겠다.

[그 곳으로 반드시, 무조건, '죽더라도' 오셔야 해요. 아시겠죠?]

"뭐? 자───"

머릿속의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느낌과 동시에, 여자의 소리 역시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무리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인 게, 완전히 연결을 끊어버린 듯하다.

'뭐야, 이 녀석…….'

완전히 마이페이스적인 녀석이다.
마지막까지 불길한 소리나 지껄이고 말야.

"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침에 느꼈던 불길한 예감이 적중할 줄야.
그래도 다행인 건 적어도 날 해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나의 필요성을 그만큼이나 강조했는데, 설마 해치려고.
…솔직히 의심쩍은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내게 '도움', 을 청한다라.'

'기억을 잃었다'는 말,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일 때 떠올랐던 수많은 '나 아닌 나'의 기억들.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은 점점 심란해진다.
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기억이───

"야, 모이라잖아."

툭,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가면서 어깨를 쳐 준 실장 덕에 생각이 끊기고 만다.
조회대 쪽을 보니, 선생이 호루라기를 짧게 두 번, 길게 한 번 부는 소리가 들려온다.
체육 시간을 포함한 모든 행사에 쓰이는 우리 학교의 집합 신호다.

"아, 응."

대답을 해도 무시하면서 조회대로 달리는 실장.
짜식, 퉁명스럽게 굴어도 챙겨줄 건 다 챙겨준다니까.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내고, 실장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이왕 초대된 거, 어디 한 번 가 보자.
왜 세상이 이 모양인지, 뜬금없이 떠올랐던 그 기억들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대체 '나'는 누구인지.
어디 좀 들어보자고.
  • ?
    개소실 2014.04.29 06:52
    내일 시험인 놈이 야자 시간에 이 짓거리 하고 있었습니다. 데헷★
  • profile
    Just 2014.04.29 07:06
    +) 고삼
  • ?
    개소실 2014.04.29 07:09
    모의고사 성적 나왔다.
    국어 3 수학 4 영어 2등급이더라.
  • ?
    개소실 2014.04.29 07:11
    야야 그것보다 이 작품 공모전으로 내는 건 어떨까?
    일단 대충대충 쓰면서 완결 지어내고 다듬으면 될 거 같은데
  • profile
    Just 2014.04.29 07:27
    형 대학이 우선 아녜요..?
  • ?
    개소실 2014.04.29 07:32
    뭐?
    내가 대학가려는 건 글을 쓰기 위해서지 글 쓰려고 대학가는 거 아니다?
  • profile
    Just 2014.04.29 07:33
    디딤돌 쌓아놓고 쓰는게 유리할것 같은데ㅋㅋㅋ
    여튼 하시믄 도와드리께요 저도 슬슬 준비하고 있고.
    공모전 시즌이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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