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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9시간이 지나고, 오전 2시를 막 넘긴 지금 이 순간.

"들었던 것보다도 멍청하게 생긴 녀석이로구나. 허나 이 냄새, 음……. 입맛을 돋우는 이 달콤한 냄새는 확실히 그 놈의 것과 흡사하군."

나는 누런 불빛이 미약하게 내려앉은 새벽녘의 어두침침한 길거리에서, 검은 색의 망토 비슷한 것으로 몸을 가린 정체불명의 거한이 붉고 두꺼운 혀를 징그럽게 놀리며 하는 말을 들어주고 있다.
다소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저 변태스러운 헛소리를 꼼짝 않고 들어주는 이유는 단 하나.
거한에게 목적지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를 차단당했기 때문이다.

'젠장, 너무 방심했나.'

폐건물로 향하는 출입구가 하나뿐인 걸 알았을 때부터 경계해야만 했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닫다니.
게다가 풍겨오는 썩은내, 거한의 망토 속에서 흘러나와 바닥을 질척질척하게 만드는 정체불명의 점액이 그 역시 '비정상인'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저력도 예측 불가, 의도도 예측 불…… 아니, 적어도 의도는 짐작이 가긴 하지만.
여하튼 이런 상황에서 불리한 쪽은 아무리 봐도 평범한 고등학생인 나.
현황의 타개책은 역시 도주 하나뿐이려나.

"거참 실례되는 말이네, 이쪽은 초면이라 조심스러운데 말야."

조심스레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거한의 태도를 살핀다.
그와 동시에 살짝, 오른발을 한 걸음 뒤로 물린다.
사실 평범한 인간이 아닌 무언가를 상대하고 있는 시점에서 거리 조금 벌려봤자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그래도 털끝만큼이나마 저 악취나는 놈으로부터 떨어지고 싶다.

"쿡쿡쿡. 이거 참, 내가 실례를 한 것 같군그래. 그래도 말이야, 좀 이해해줄 순 없는 건가? '하계' 같은 잡것에 집착하던 무지렁이 놈과 똑같은 냄새가 나길래 말일세. 너무 반가워 나도 모르게 실례를 저지른 모양이야."

무언가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주르륵 흘러내리는, 새하얀 달빛도 투과하지 못하는 짙은 흑색의 점액.
지독한 냄새가 다시 바람을 타고 코를 찌른다.
아까부터 계속 풍겨와 코를 마비시키는 이 악취의 근원은 아무래도 저 점액인 듯한데…….
도대체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건지 도통 짐작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반가운 사람이 뭐 이리 지저분한 냄새를 풍기시나? 위생 상태가 순 엉망이구만."

악취 때문인지, 이 비정상적인 상황 때문인지 점점 굳어지는 머리가 원망스럽다.
애써 눈을 거한에게 고정한 채, 조심스레 다시 왼발을 한 걸음 뒤로 물린다.

"고상한 척하는 건 여전하군, 하찮은 인간 주제에. 하긴, 그 녀석의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닐 때부터 알고는 있었네만."

"하찮다니, 꽤 상처입을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지구의 60억 인간들에게 사과하는 게 어떨까 싶어."

조금씩, 조금씩 한 발짝씩 뒷걸음질친다.
악취를 품은 채 불어오는 바람에 증발한 식은땀이 남기는 한기가 절로 소름을 돋게 한다.
스슷, 스슷, 즈즛.
신발이 살짝 끌리는 소리마저도 커다랗게 들릴 정도로 날카로워진 신경이, 이대로는 위험하다고 경고 신호를 보내온다.

"사과? 이 내가, 고깃덩이에게 사과라고? 어리석군. 너무나도 어리석어, 인간이란 것은. 주제도 모르고 제 위치도 생각지 않은 채 건방지게 떠들어대는 그 모습이, 정말 짜증나다 못해 귀엽단 말이지."

주르르르, 이제는 쉴 새도 없이 흘러나오는 점액.
문득 등 뒤에 주욱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진다.

"────!"

왜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몸을 숙이고 왼쪽으로 몸을 던지는 나.
방금의 어색한 감각에 대한 의아함과 거한에 대한 경각심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콰아아아앙────
고막을 뒤흔드는 굉음이 불과 0.5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있던 바로 옆을 덮쳐온다.
0.5초보다 더 짧았는지 따질 여유조차 주지 않는 충격파가 강하게 나를 때린다.
정말 가까스로 피하긴 했지만, 빌어먹을 충격파 때문에 결국 옆의 울퉁불퉁한 돌담에 등을 부딪히고 만다.

"크읏───"

제대로 자세도 잡지 못하고 꼴사납게 엉덩방아를 찧어서인지, 골반이 꽤 쑤시다.
하지만 재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진 '무언가'의 존재가, 그 아픔마저 잊게 만든다.

'방금 그거, 대체……?'

시커먼 생물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니 이 세계에 존재하기나 하는 건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기괴함을 지닌 생물이었다.
식물이었는지, 동물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새하얗고 커다란 이빨이 불규칙적으로 달린 입, 그것만은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아니……겠지, 설마.'

분명 헛것을 본 것이겠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 때문에.
그렇게 멋대로 납득해가며 애써 자신을 다독여 보아도, 공포와 긴장으로 굳은 몸은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 번으로 죽는다, 이건 필사(必死)다.
그런 절망적인 생각이 멋대로 샘솟아 몸을 옥죄는 뱀이 된다.
패닉 상태임에도 또렷이 귓가에 울리는 거한의 목소리에 움찔, 하고 몸이 멋대로 반응한디.

"자, 어쩔 텐가? '조율자' 나으리. 개인적으로는 거기 멍청하게 서 있는 대신 얌전히 내게 오는 걸 추천한다만.

쿨럭, 쿨럭.
기침이 터져나와 무심코 손을 입 가까이에 댄다.

"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게 떨리긴 하나 몸이 움직여주기 시작한다.
약한 기침을 다시 두어 번 뱉어낸 후, 두 팔을 흔들어 흙먼지를 걷어내려 애써본다.
허나 누런 먼지의 커튼 뒤로 두 팔을 벌린 거한의 실루엣만이 눈에 띌 뿐, 눈앞은 도저히 맑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거절, 쿨럭! 하지. 미안하지만, 쿨럭, 쿨럭. 난 에티켓 안 따지고 죽자살자 덤벼드는 변태랑 어울리는 취미 따윈 안 가지고 있거든."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먼지 속에서도 확연히 보이는 길쭉한 무언가가 거한의 실루엣을 반으로 가르고 솟아오르는 것이 보일 뿐.
그 무언가의 동선은 정직하면서도 빨라서, 오른쪽으로 재차 몸을 굴리려던 순간 이미 늦었음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허윽."

창자가 안에서 완전히 터져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격통이 복부를 꿰뚫고 지나간다.
목구멍을 통해 비릿한 액체가 솟아올라, 순간 터져나온 날숨에 섞여 입가를 적신다.
짜릿한 고통의 후유증이 호흡조차도 막아버려, 괴로움에 절로 몸을 웅크리고 만다.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군, 네놈은. 건방지게 노려보는 듯한 그 눈매도 그렇고, 제 주제도 모르고 나불대는 그 주둥이도 그렇고 말이지.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그렇게 눈치없이 떠들어대다간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수가 있다고 말이지."

"……."

'붉은 눈'.
전에 보았던 적이 있는 듯한 붉은 눈이 바로 앞에 있다.
사람 하나쯤은 흔적도 없이 찢어버릴 듯한 안광이 코앞에서 번들거리는 광경에 식은땀이 절로 흐른다.
손끝이 딱딱하게 굳고, 다리는 미약하게 떨린다.
두려움, 포유류의 원초적인 감정 중 하나가 내 전신을 지배하려 든다.

'젠장…….'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징그러운 모습으로 날 맞이하고 있는 상황은 확실히 맨정신으로 버틸 것이 못 된다.
거기다 흙먼지도 완전히 가라앉아, 그로테스크한 거한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쳐지니 두려움이 더욱 가증된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생물의 정체, 그것이 거한의 몸과 일체되어 있음이 처음 드러나는 순간이다.
아니, 정확히는 거한의 신체가 생물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나 할까?
흑색보다는 짙은 묵색에 가까운 신체, 그 신체의 한가운데에 떡하니 박혀있는 큼직한 이빨들.
그 이빨들의 틈새 사이로 예의 점액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특이한 애완동물을 키우네. 뭘 먹이길래 이리 입냄새가 심해?"

목소리가 떨리려는 걸 애써 참고, 침착하게 말을 건다.
이 상황에서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끝장이기에,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노력해본다.

"후후, 미안하게 되었군. 이 녀석이 먹는 게 천차만별이라, 나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서 말일세. 게다가 며칠간 굶주렸거든. 어찌어찌하다 이렇게 별식을 만나니 심히 흥분한 듯한데."

"별식 취급도 받고, 이거 참. 사람 체면이 말이 아닌데."

통증 때문에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다.
한 걸음만 걸어도 신음이 터져나올 것 같은 상태에서 이런 최악의 상황이라니, 정말 운도 지지리도 없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돌연 거한의 적안이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빛을 뿜어낸다.

"……끝이다."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무언의 선고.
살기가 미친 듯이 뻗어져나와, 대기를 얼리며 동시에 내게 쇄도해온다.
이젠 피할 힘조차 없어, 이제 끝인가보다 하고 눈을 감는 순간─────



"엇차차, 마중 나왔슴다아아────!!"

소녀의 활기찬 목소리.
그리고,

카아앙!
두 생물체가 부딪히는 소리치고는 맑은 소리가 좁은 골목에 울려퍼진다.

"치잇……! 방해하기는!"

뒤이어 거한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려온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며시 눈을 뜨려니, 사람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향긋한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그 뒤에 보이는 것은 핑크빛 일색의 커튼처럼 찰랑이는 긴 머리칼, 청소년 심의는 통과하지도 못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옷차림, 크게 벌어져 그 안이 훤히 보이는 거한의 입을 떡하니 막고 있는 길다란 철봉 하나.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 기적처럼 한 방에 거한의 일격을 막아낸 소녀는, 뒤를 돌아보며 내게 윙크를 해 보이고는 아까의 활기찬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여신 대리, 행동대장 메이엔입니다! 당신이 저희, '변절자들'의 특별 손님이신가요?"

"뭐……?"

당황스러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까부터 뭐가 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아, 말씀 안 하셔도 돼요! 보스께서 '잘 버텨주었다'라고 전하라고 하셨으니까, 지금 전해드릴게요! 잘 들으셨죠? 전 분명 전했어요? 엇차!"

혼자서 실컷 떠들어대더니, 보지도 않고 거한의 2차 공격을 가볍게 받아내는 소녀.
소녀의 방어에 재차 저돌적인 공격을 퍼붓는 거한.
혼란의 격무(激舞)를 장식하는 충돌음, 충돌음, 충돌음.
물어볼 것은 산더미지만, 거한이나 소녀나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낄 틈은 개털만큼도 없어보인다.

"…대체, 뭐야 이거……."

너무 순식간에 흘러가는 상황이 익숙하지가 않다.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던 연극에서 정신을 차려 보니 엑스트라가 되어 있었다, 같은 느낌이랄까.
허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니, 피곤이 기다렸다는 듯 파도처럼 몰려온다.

'이렇게 자도 되는 건가…….'

저 애를 믿어도 되는 건지 아직은 분간이 가지 않지만, '특별 손님'이라며 정중하게(인가) 대하는 걸 보아 적어도 내가 자는 틈에 무언가를 저지르지는 않을 듯한데.

'……아, 몰라.'

눈꺼풀이 너무 무겁고, 충돌음조차 자장가로 들린다.
생각하기조차 힘들고 귀찮을 뿐.
그냥, 이대로 조금만 자자.
잤다 일어나면,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나 있겠지────

누군가가 채팅방에서 당신을 호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