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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 맞지?"

순식간에 핏기가 다 빠져나간 듯한 싸늘함이 전신을 감쌌다.
이름을 입에 올리자마자 목이 바싹 마르는 것이 느껴졌다.
연이, 이 연, 내 여동생.
세상에 하나뿐'이었을' 여동생, 하나뿐'이었을' 가족.
그 연이가, 죽은 줄만 알고 있었던 연이가 눈앞에 멀쩡히 숨쉬고 살아있다는 것을 가까스로 이해한 후에야 다리에 힘이 빠지고 눈물이 치솟았다.

"저…………………."

연이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지만, 내용은 조금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기쁘고 좋았지만, 왠지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나왔다.

"맞는 거지, 그치……?"

뿌옇게 흐려진 시야에 비친 얼굴은 일렁이기만 할 뿐,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내 착각일 뿐이라도, 정녕 연이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 정말로 좋았다.

"……!'

방울진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툭, 투둑, 툭, 바닥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눈물의 온기가 턱에 남아있음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가리려 해도, 끊임없이 새어나오는 눈물은 노력이 무색하게 흘러나와 손끝을 적셨다.
목소리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조그마한 목소리로 흐느끼기만 하는 것이, 다시 연이를 보게 된 내 유일한 반응이었다.

"…………!"

미안했다.
지켜야만 했는데, 지킬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질 못했으니.
괴로웠다.
하다못해 좀 더 아껴주고, 감싸주고, 사랑해 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으니.
원망했다.
오빠라는 놈이 무엇 하나 해준 것 없이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좋은 추억까진 아니더라도 진심 담긴 선물 하나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싫었으니.
소망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 돌아오길, 설령 나를 기억해내지 못한다 해도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길.

"연아……!"

오빠는 강해야 한다, 고로 눈물을 보여선 안 된다.
그런 옛날의 마음가짐은 잊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 순 없었다.
아니, 들지 못했다.
이것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비슷한 사람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강제로 머리를 내리누르는 듯했다.

'이제서야 봤는데, 이렇게 보게 됐는데 의심이나 하고 있는 나란 놈은……!'

납골당의 항아리로만 남게 된 연이가, 이제는 없는 유품으로만 남게 된 연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었다는 것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내 자신이 역겨웠다.
정말이지, 있는 힘껏 얼굴을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이, 일단 진정해 주세요. 뭔가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은데……."

연이의 목소리.
단 한 번, 단 한 번밖에 듣지 못했었지만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연이의 존재를 부정했다는 사실을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었다.

"왜, 왜 그러는 거야, 연아……! 나야, 네 오빠야……!"

고개가 절로 들렸다.
무릎을 꿇은 채, 연이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며 말했다.
이렇게 내 얼굴을 보여주면 연이가 날 알아봐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다가오지 마요!"

연이는 그렇게 외치며 뒷걸음칠 뿐이었다.
어째서?
질문에 대답은 없었다.
단지, 날 거부하는 연이의 모습에 충격을 먹었을 뿐.
전신의 힘이 다 빠져나갔다.
그대로 털썩, 쓰러져 버렸다.
누군가가 무어라고 말하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조차 몰랐다.
그저, 그렇게 쓰러져 멍하게 생각했다.
난, 정말 무엇을 위해 살아있었던 걸까.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른 채 연이와 함께 죽어버리는 편이 더 좋았던 것 아닐까 하고.



"───아, 윤아!"

누님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아무도 없이 텅 빈 공간이 나를 반겼다.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는 연이와 누님을 볼 수 있었다.
그제서야 아까의 내가 못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었지만.

"…저, 얼마 동안 이러고 있었죠?"

"20분 정도."

"20분, 인가요."

현실도피치고는 빠져나온 시간이 상당히 빨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이런 점에서만은 부친과 달랐으니까.
다시 한 번, 찬찬히 가짜 연이를 훑어본다.
피부가 어두워 보이지만, 아무리 봐도 연이와 완벽하게 똑같이 생겼다.
목소리도, 생김새도 똑같은 주제에 연이가 아니라니, 이 얼마나 저주받은 운명인지.

"……미안."

고개를 푹 숙이며 잘못을 시인했다.
연이가 아닌 사람에게 이런 추태를 보였으니, 몇 번을 사죄해도 모자라다.

"아, 아녜요."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마주 숙여보이는 가짜 연이.
그래도 조금은 괜찮아졌다 싶었지만, 이렇게 다시 보니 가슴이 아팠다.

"이름, 알 수 있을까?"

최대한 웃어주자.
어색한 미소라 해도, 정녕 내 여동생이 아니라 해도 깨뜨리고 싶지 않은 웃음을, 이렇게라도 지켜주자.
그런 생각으로 웃으려 노력해 보았지만, 어째 웃었다기보다 찡그렸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아무래도 착각만은 아니었던 듯, 가짜 연이의 웃는 표정이 한층 더 어색해진 것이 눈에 띄었다.

"뮤아예요. 풀네임은 비밀이고요."

한국인의 이름이 아닌 이름, '풀네임'이 아닌 이름.
뮤아, 라는 두 글자가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아아, 이 아이는 정녕 내 동생 연이가 아니구나.
그렇게 납득하고 나니, 다시금 눈물이 치솟는 듯했다.
신이 날 이상하게 만들어 버린 듯했다.
눈물이 나와야 할 슬픈 상황임에도 눈물은 터져나오지 않았고, 기뻐해야 할 상황임에도 눈물이 뜬금없이 터져나왔으니.

"……그렇구나. 내 이름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내 자신을 소개하는 것은 당연지사.
일그러진 그대로 굳어버린 입을 간신히 놀려 입을 열려고 하자,

"뮨이란다. 풀네임은 톱 시크릿─코드 미스터리. 믿기지는 않겠지만, 엄연히 피가 섞인 친오빠지."

누님이 나와 뮤아의 사이를 가로막은 채, 그렇게 말했다.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누님."

누님을 노려보며 툭 내뱉었다.
얼굴에 핏기가 사라져 있음이 느껴졌다.
누님이 내게 소중한 사람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농담이었다.
내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부친은 나와 연이를 모두 죽이려 했지만 나를 죽이지 못한 채 교도소에 수감되고 말았다.
그런 내게 여동생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연이 하나뿐이었는데.
그 사실은 누님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시는 건지.
──이 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또 믿고 있었다.

"맞아요! 어떻게 저와 저 분이 치, 친남매일 수가 있어요! 심지어 저 분은 하계 출신인데……."

처음 듣는 단어가 뮤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하계', 라는 것은 대체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질문으로 내뱉으려는 찰나, 누님의 입이 열렸다.

"아니. 하계 출신이 아냐. 우리와 같은, 아니, 오히려 누구보다도 '벨라'에 어울리는 '반신'이지. 정작 당신은 인간으로 불러달라고 했지만."

반신, 이라는 말에 이성이 흐려졌다.
이 곳은 무슨 사이비 교단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생각은 곧바로 내 입을 통해 거칠게 내비쳐졌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반신이라고요? 이건 무슨……."

"전부 사실이야, 윤. 증거도 있고. '여기'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한 건 그 증거를 보여주고자 했던 거고."

격정적으로 욕을 뱉어내려는 내 말을 끊으며 누님이 외쳤다.
그 표정이 너무 절박하게 비쳐져서였는지, 순간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증거, 요?"

그런 나 대신, 뮤아가 짧게 한숨쉬듯 누님에게 물었다.

"그래, 증거. 내가 지니고 있던 기억의 편린(片鱗)을 꺼낼거야."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누님은, 곧 중앙의 커다란 기계를 향해 곧장 걸어갔다.
또각, 또각.
귀 바로 옆에서 굽을 부딪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커다란 적막이 우리 사이를 감쌌다.
기계 앞에서 걸음을 멈춘 누님이 무언가를 조작하자, 조그마한 글자들이 새겨져 있는 빛나는 조각이 천장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조금 어리둥절할지도 몰라. 기억의 임프린팅(imprinting) 현상이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도 모르고. 특히 윤의 경우 왼쪽 시신경의 소실(消失)이 무슨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상황이라 더 위험해. 하지만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누님의 정신없는 설명을 듣자니 혼란이 왔다.
허나, 그 와중에도 또렷하게 들린 단어가 있었다.
'부작용', '위험'.

"잠깐, 이번에는 무슨 수작을────"

내가 무어라 반론을 제기할 틈도 없이 누님은 무언가를 기계에 삽입했고, 그와 동시에 나는 모든 감각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처음임에도 익숙한 상황에 직면했다.
속았다, 라고 생각한 그 순간.

[이런이런,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군. 더러운 하계의 피를 가진 버러지를 말이야.]

묵직한 목소리, 불길한 웃음소리.
식은땀을 절로 흘리게 만드는 두려움, 생각마저 허락하지 않는 공포.
그 모든 것의 근원인 '붉은 눈동자의 녀석'과, 나는 다시 한 번 조우하고 말았다.

누군가가 채팅방에서 당신을 호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