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01 07:11

[개소실]미제 SFV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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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은 농후해. 그렇다면, 어째서 녀석이 이런 술수를 써가면서 날 상대하고 있는 거지?'

순수한 전력(戰力)으로 따져보면 녀석은 나를 한순간에 죽이고도 남을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기록'……이라고 했던가, 그래봤자 내게는 복부의 괴물을 놀리는 기술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하여튼 그는 권능이라는, '정상'의 부류를 가볍게 벗어난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퍼부을 수 있었고, 그렇게 된다면 나 같은 정상인은 금세 너덜너덜한 고깃조각으로 만들어질 것이 당연지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굳이 내 정신계에 간섭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어.'

녀석이 머리로 싸우는 전략가인지, 몸으로 싸우는 장수인지조차 모르는 상황.
섣불리 결론을 내리다가는 도망 한 번 제대로 치지 못한 채 죽을 것이 뻔했다.
유일한 도주의 열쇠는 페이담의 방심.
허나 그 열쇠가 활로를 탄탄히 하기에는 아직 어려움이 커 보인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여유로운 말투와는 상반된 확실하고 침착한 손속, 그리고 쉴 새 없이 흐르는 악취 섞인 점액 사이에서 살아남기란────

'──────어?'

문득, 한 가지 '모순'이 [느껴졌다].
한 번 가진 의문은 재빨리 다음 의문의 꼬리를 물었고, 다음 의문의 꼬리는 한 가지 '만의 하나'의 가능성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만약, 그 말도 안 될 법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살아남는다'라는 있을 수조차 없어 보이던 결과도 만들어낼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기에.

'아니, 일단은 떠보기부터다.'

아직 확신은 할 수 없었다.
그 가정이 100% 명확히 사실 판별이 가능해지기 전까지, 섣불리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떠보고, 녀석의 반응을 통해 진위 여부를 판별하자.
속으로 그렇게 결심한 후 고개를 들자,

"하, 아직도 그런 눈을 하고 있군.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게 네놈다워."

적안(赤眼).
먹이를 눈앞에 둔 늑대의 그것처럼 붉게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주시하고 있었다.
찌릿, 하고 저려오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절대 이길 수 없다, 고 본능이 외치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발버둥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뻣뻣하게 굳은 몸도, 본능에 화답하듯 잘게 떨렸다.

'젠장, 좀!'

허나, 억지로 내리눌렀다.
혀를 깨물어 생긴 비린내로 잡념을 떨쳐냈고, 꽉 쥔 주먹에서 배어나오는 피의 끈적한 감촉으로 떨림을 막았다.
절대 두려움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의미 모를 결심이 나의 등을 떠민 덕이었다.
왜인지는 몰랐다.
단지,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기에 떠밀린 대로 행동했을 뿐.

"───넌,"

입을 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조금이라도 그 빌어먹을 냄새에 중독되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호흡에 집중했다.
찌이이이────
무언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갑작스레 어지럼증이 찾아왔지만, 혀를 한 번 더 깨무는 것으로 버텨내어 가까스로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대체, 왜 나를 노리는 거지?"

짧게, 천천히, 또박또박.
한 마디 한 마디마다 호흡을 하며 물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뱉을 때마다 시간이 느려졌다 빨라지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몸을 지배했다.
말을 잘 하긴 한 건지, 떨지는 않았는지.
심지어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입으로 내뱉은 말을 머리가 멋대로 지워버린 것처럼 완전히 멍해져버려, 그저 페이담의 붉은 눈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멍청하긴. 하계의 벌레를 죽이겠다는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지?"

꿈틀, 페이담의 눈썹이 움직였다.
대화를 시도하는 저의를 알 수 없다는 뜻인지, 아직도 저항하는 벌레의 움직임이 성가시다는 뜻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허나 이런 미지근한 반응이라면 대답을 얻기는커녕 말을 걸다 목이 날아갈 가능성이 더 크다고, 나는 확신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요행은 없어.'

식은땀이 입 안에 배어들어 퍼진 짭짤한 맛이 유난히 비리게 느껴졌다.
죽음에 한 발 내딛은 순간.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박을 해 보기로 결심한 내 자신이 미친 놈 같았다.
간단하지만 목숨을 건 최후의 도박을 하는 데 필요한 준비물이 입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게 느껴졌다.

'한다.'

하지만, 아무리 벌벌 떨며 별다른 활로를 궁리해 봤자 답은 하나뿐이었다.
정면승부, 진검승부.
죽기살기로 부딪히는 것만이, 생로로 향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왜 하필 나냐고 묻는 거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바람에 대나무 속이 울리는 것처럼, 교묘한 소리가 목울대를 타고 흘러나오는 듯했다.
마른침이 절로 삼켜졌고,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바짝 섰다.
까딱하면 죽는다.
믿을 만한 사람도, 도구도 없다.
그저 0%에 근접한 확률로 만날 '만의 하나'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 뿐.

"뭐? 허허, 고작 그딴 게 궁금했던 건가. 좋아, 죽이는 김에 가르쳐 주지. 네놈에게는 이미 옛날에 '빚'을 졌다. 그것을 지금에서야 갚게 되었을 뿐."

페이담은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고, 나는 그 대답을 들음으로써 '만의 하나'의 가정이 완벽한 정답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이, 페이담의 탈을 쓴 채 되도 않는 연극을 하고 있는 제 3의 인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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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cta 2015.03.01 09:23
    주인공은 뭔가를 깨달은 듯 하지만
    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건 사실이지만..
    저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생각해내는 주인공도 어쩌면 이미 보통 사람은 넘어선 것일지도요..?

누군가가 채팅방에서 당신을 호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