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9 20:11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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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진 모르겠지만 뚜렷하게 기억하는 기억이었다.
난 엄마와 함께 어떤 길 위에 서 있었다.

"엄마, 저 앞이 안 보여요."

난 불안한 목소리로 기대며 말했다.

"어머, 애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저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잖니."

엄마는 다독이듯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어느 순간부터 그랬다. 저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인대도 난 항상 그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꼈다. 마치 예전엔 보이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어서 괴로워했다. 분명 한 번도 본 적 없다.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다른 것들은 볼 수 있어도 저 앞만은 볼 수 없었다. 단지 마지막에 눈을 감을 때. 저 앞은 비로소 다른 것들과 같아질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아니, 그럴 것이다.

"우리도 한때 그랬었지. 그 불안감 때문에, 그 앞을 내다보려고 잠도 안 자고 노력했었어. 소용없었지. 발돋움해 봐도, 망원경을 끌고 와 본다 해도. 그 앞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어른들은 자신들 역시 그랬던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들도 여전히 저 앞이 보이지 않아서 불안하다고 말한다.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들도 이런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내 눈앞에 보이는 그들은 불안감을 극복한 듯한 모습이었다, 난 그들의 현재 모습이 부러웠다. 그들의 과거가 아니라.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난 혼자 길 위에 서 있었다.
엄마는 길 한쪽에 서서 가만히 배웅하고 계셨다.
난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세상을 감상하며 걷는 길은 평온했다. 아침 안개와 함께 내려앉은 적막이 신비로웠다. 점심에 맑게 갠 하늘의 청량함은 눈부셨다. 노을이 뿌리는 황금빛 빛은 안락해 보였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들이 보였다.

어느 순간인가 뒤를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들이 뒤섞이고 있었다.

뒤섞인다.

뒤섞인다.

뒤섞인다.

뒤섞였다.

그것은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모든 것이었지만, 내가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나를 향해 덮쳐오기 시작했다.

저것이 뭐지?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이 사라진다. 고함이 질러진다. 비명이 질러졌다. 저것이 뭐지?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길을 갉아먹으며, 나를 옥죄려 달려들고 있는 듯했다.
분명 하나만의 사실이 남아있었다. 
결국, 먹히지 않으려면 달려야 했다.
보이지 않는 저 앞을 향해 냅다 달려야 했다.

보이지 않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저 앞엔 낭떠러지가 있을지도 몰랐다.

어렸을 때는 보이지 않았어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으로 가득해서 빨리 가보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그때도 검었을까? 저 앞이?
분명 난 검은 것이 아닌 무언가를 상상했었던 것 같다.

어둠 속으로 내달려도 난 여전히 길 위였다. 어둠 속엔 길이 있었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길이. 그 길은 협소한 외길이었다. 옆으론 낭떠러지가. 그 밑엔 어둠보다 깊은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깊고 차가워 보이지만 어쩌면 안식처럼 느껴지는 심연은 실타래처럼 얽혀오는 혀를 내두르며 속삭이고 있었다. 그 혀는 나에게 포기의 감미로움을 전하고 있는 듯했다.

여전히 저 앞은 어두웠다. 이윽고 갈림길이 나타났다,
뒤쪽의 괴물이 길을 먹으며 달려드니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것도 분명했다.
어쩌지? 왜 불행해 보이는 것만 분명해 보일까.

어렸을 땐 두렵지 않았었다.

상상했다. 저 앞에 뭐가 있을지.
분홍빛 꽃동산이라도 상상했었나.
아니 난 분홍색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많은 사람이 말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라고.
어둠이 가득해도, 어둠을 보지 말고 네가 상상하라 한다.

저 앞은 보이지 않는다.
검은색 도화지...

아니다. 하얀색이다. 저 앞은 보이지 않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다.
하지만 보이지 않게 가로막는다 해도, 빛을 막진 않는다.

백색의 도화지에 무언가를 그려보자.
내가 상상하는 길을 그려보자.

상상하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면 어떻게 하냐고?

뭐, 받아들이자. 그게 인생이야.

어쨌든 갈림길의 한 방향으로 걸어나가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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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써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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