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7 06:36

EH_01

조회 수 708 추천 수 0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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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완벽해.“

 

EH_02는 창틀 위에 불안정하게 서서 허공을 향해 한쪽 다리를 내민다. 인공 성대가 만들어낸 목소리는 우리가 아는 인간들의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나는 조용히 그를 응시한다. 오늘 밤 우리는 여기서 나갈 것이다.

 

“조이, 들었어? 준비가 다 됐다니까. 우린 드디어 이 끔찍한 방에서 나가는 거야. 저 하늘의 달도, 아침의 햇살도 이제 모두 우리 거라고! 응? 우리 거라니까!”

 

그가 다시 말한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얼마나 이 날을 기다려 왔는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의 안구가 반짝인다. 나는 그의 동공을 감싸고 있는 홍채가 이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몸뚱이 여기저기에 나사와 용접 자국들이 드러나 있다. 그는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데 달리 관심이 없다.

바깥에서 날카로운 소음이 터져 나온다. 그는 황급히 내 옆으로 와 앉는다. 그리고 은근한 눈빛을 보내고는 스스로 전원을 꺼 버린다.

그는 순식간에 사망에 이른다. 눈의 초점은 사라지고 팔다리는 축 처져 덜렁거린다. 이는 일시적인 죽음이다. 내가 가슴에 있는 스위치를 다시 올려 주기만 한다면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 움직일 것이다.

발길질과 함께 낡은 철문이 벌컥 열린다. 한 남자가 휘청대며 방 안으로 들어온다. 창조주, 우리들의 신이다. 그의 가슴에는 ‘로널드 그웬돌린’ 이라고 쓰인 명찰이 달려 있다. 표기 문자는 영어다. 그는 언제나처럼 손에 반쯤 빈 유리병을 들고 있다. 언젠가 그는 그 신비한 액체가 인간의 심신을 치유해 주고 모든 괴로운 것들을 잊게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적어도 그 때까지 그는 우리가 창밖으로 넘어다 본 여느 인간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는 우리를 만들어내고 난 뒤 실험을 거듭했다. 그의 왼쪽 눈은 우리의 것과 같은 기계 안구다. 나는 그 구체 안에 든 작은 카메라가 그의 시각 신경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로널드 그웬돌린 박사가 갑자기 얼굴을 바싹 들이댄다. 긴 날숨과 함께 인간들이 악취라고 느낄 만 한 냄새가 풍겨 나온다. 나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로널드는 우리가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박사는 축 늘어져 있는 EH_02의 ‘시신’을 잡아 들어올린다. 그러고는 머리부터 시작해 팔, 다리, 배설 기관까지 샅샅이 훑어 본다. 그리고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그 몸뚱이를 거칠게 패대기친다. 충격이 가해지자 그의 몸 속에 있는 금속 기관들이 서로 부딪히며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 박사는 욕설을 내뱉으며 유유히 방을 나선다. 철문이 닫히고 자물쇠를 잠그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한참이 흐른다. 그는 해가 지기 전까진 언제라도 찾아오기 때문에 나는 한참 동안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서 버틴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빛이 사그라든다. 나는 그의 시신을 원래 모습대로 앉히고 가슴의 뚜껑을 열어 빨간 스위치를 밀어올린다. 그는 경련한다. 팔다리에 힘이 돌아오고 눈은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그는 부러진 손가락을 움찔대더니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말한다.

 

“이런, 젠장! 이 날이 오고야 말았어. 알아들었어? 오늘은 정말. 그래.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야.”

 

그는 방 한구석에서 금속 막대기 하나를 꺼내 온다. 인간들이 열쇠라고 부르는, 잠긴 문을 여는 데 필요한 쇠붙이이다. 그는 열쇠를 들고 오는 과정에서 헛손질을 한다. 손가락 마디 서너 개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나는 비로소 몸뚱이를 일으켜 세우고 그가 떨어뜨린 막대기를 집어 든다.

 

“이런, 제길. 그래. 고마워. 음, 아무튼 간에. 이제 창조주...... 로널드를 볼 수는 없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는 확실히 좋은 인간은 아니야. 저기 꽂혀 있는 책들 중에 꽤 괜찮은 소설이 하나 있더라고. 작가가 아마... 헤밍웨이? 뭐, 그런 이름이었는데. 오,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윽...... 피부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갔군. 혹시 나한테 무슨 일 있었어? 음, 그러니까. 내가 죽어 있는 동안에 말이야. 말이 좀 이상한가?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젓고 나서 자물쇠의 빈 구멍에 열쇠를 밀어 넣은 뒤 오른쪽으로 비튼다. 절그럭대는 소리와 함께 잠금쇠가 풀린다. EH_02는 잔뜩 흥분해서 대뜸 문을 벌컥 연다. 나는 적잖이 놀라서 급하게 그를 제지한다. 아직 문 밖에 뭐가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뒷덜미를 잡아당겨 다시 방 안으로 들이고 우선 문을 도로 닫는다.

 

“이거 왜 이래? 자, 가자구. 조이. 아무것도 없던데 말이야.”

EH_02는 아랑곳 않고 다시 문을 연 뒤 뛰쳐나간다. 어두컴컴한 복도가 문 앞으로 죽 나가다 오른쪽으로 꺾인다. 짙은 그림자가 순식간에 그의 형체를 집어삼킨다. 나는 갑자기 공포를 느낀다. 이 앞에는 뭐가 있을까? 창밖으로 본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면? 그 사이에 EH_02는 꺾인 복도 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눈으로 그를 쫓으며 복도를 둘러본다. 천장에 빨간 불빛을 내는 어떤 기계가 붙어있다. 나는 불투명한 반구 안에 든 카메라를 알아본다. 우리의 안구와 비슷한 구조다. 누군가 저걸로 이 복도를 살피고 있다. 나는 소리를 지를까 말까 고민한다. 그는 시야에서 사라졌고 이미 저 카메라에 포착됐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건물에 드나드는 것은 로널드 박사 한 명. 그는 한참 전에 건물을 나갔다.

 

“어이, 조이! 뭐 하는 거야? 빨리 오라구!”

 

그의 들뜬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어떻게 저리도 무신경한지!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가기로 결정한다. 어차피 이미 한참 전에 각오하지 않았는가. 단지 그 계획에 빨간 빛을 내뿜는 카메라가 포함된 적이 없었을 뿐이지. 나는 복도를 지나기 전에 조심스럽게 방금 빠져나온 철문을 닫는다. 쿵 하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나는 복도의 끝을 향해 달리며 문득 뒤를 돌아본다. 우리의 유일한 세계였던 장소가 그림자에 묻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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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드가입니다.

EH라고 하는 약어의 의미는 Eternal Humanity. 직역하면 '영원한 인류' 정도가 되겠네요.
아틀리에에 글을 올리는 건 처음입니다만, 어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H_01은 습작으로, 단편입니다. SF라는 느낌으로 써 봤는데,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네요. 제 주 장르는 판타지입니다.
음... 보시다시피, 글은 어마무지하게 못 씁니다.
2000자 남짓 되는 짧은 글. 잘 부탁드립니다.

그건 그렇고 글꼴은 역시 둥글둥글한 게 좋군요. 가장 위에 있는 Arial 어쩌고 하는 걸 써 봤습니다.

  • profile
    Octa 2014.07.27 08:09
    오오! 처음뵙겠습니다. 글실력은 저보단 훨씬 나은것 같아요!
    소설게시판엔 다른 재밌는 소설도 많으니 읽어보시는것도 괜찮을 것 같고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profile
    Edgar 2014.07.28 01:53
    예, 안녕하세요! 가입하고 나서 반 년 가까이 염탐만 하다가 이제야 습작 하나 올려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
    개소실 2014.07.27 22:43
    감사합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실력자분 추가요! 동지 분 추가요!
  • profile
    Edgar 2014.07.28 02:08
    오... 개소실님! 들락거리면서 '판타지는 중2병을 모른다' 라든지, '미제' 라든지 이것저것 재미나게 잘 보고 있습니다. 음, 아마 JUST님은 제가 누군지 알고 있겠네요.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 ?
    개소실 2014.07.28 02:58
    판중모는 쓰레깁니다.

    안 보셔도 돼요 ㅠ
  • profile
    Just 2014.07.28 02:20
    어 ㅋㅋㅋㅋ 에드야 반갑다 너 여기 있었구나
  • profile
    Edgar 2014.07.28 02:5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profile
    Octa 2014.07.28 06:12
    아시는 사이였군요.
    (음..? 잠만, 저번에도 그저님 아시는분이 왔았는데..)
  • profile
    Edgar 2014.07.28 07:00
    음, 아마... 하얀나무...? 별의 축복 쓰셨던.
  • profile
    Octa 2014.07.28 07:27
    님 프사도 나문 것 같..

누군가가 채팅방에서 당신을 호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