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07 04:41

습작.

조회 수 3809 추천 수 0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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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물러가는 시기라고 뉴스에서는 실컷 떠들어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광장은 전례가 없던 사상 초유의 폭염사태에 노출되어 있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주변의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라던가, 각자의 갈 길을 향해 여기저기 이동하는 행인들에 의한 시끌시끌한 분위기에 질릴 법도 할 터였건만, 그 날은 일찌감치 장사치들도 가게문에 자물쇠를 내걸고 피서니, 휴가니 하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린 상태였다. 거리도 한산하다 못해 이따금씩 큰 도로를 지나가는 차를 제외하자면 그야말로 '말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간혹 우산을 양산처럼 들고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던 중년대 부인이나 가방을 메고 축 처져 터덜터덜 걸어가던 꼬마 등 어딘가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행인들을 몇몇 보기는 했으나, 그들은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건물의 그늘 속으로 몸을 숨기며 기분나쁠 정도로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과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일렁거림이 보이는 아지랑이로부터 일찌감치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아……."

허나 나만은 그들과의 동선과는 정반대로, 광장의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 있었다. 손에는 꼬깃꼬깃 접힌 자그마한 쪽지 하나, 등에는 무거운 배낭 하나. 멋을 부리지는 않았으나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는 않도록 반듯하게 차려입은 하늘빛 셔츠는 신경써서 입은 보람도 없이 땀에 절어 안이 비쳐보였고, 온 몸은 마치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가슴이 턱 막히는 듯한 더위에 참을 수 없어 크게 한숨을 내쉬어 보았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턱선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대충 훑어내고, 가까운 벤치에 아무렇게나 앉아 쪽지를 펴 보았다. 너무 조그맣게 접혀있어 완전히 펴는 데만 한참이 걸린 쪽지에는, 굵은 매직으로 자그맣게 한 문장만이 써져 있었다.

 

[광장에서 운명의 상대를!]

"…이렇게만 써놓으면 누가 아냐고."

구깃, 애써 펴놓은 쪽지를 아무렇게나 쥐어 던졌다. 톡,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땀을 너무 흘렸나, 쌓여있던 피로가 한번에 몰려오는 게 느껴졌다. 의식이 조금씩 사라져갔고, 어느새 감긴 눈은 뜨려고 해도 떠지지 않았다.

'…이대로 그냥 자 버릴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

타박, 타박.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뚜렷하게 인간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조그맣긴 해도 살짝 끌리는 소리가 섞인 그 발소리가, 내게는 마치 어린 꼬마가 사이즈가 큰 아빠의 슬리퍼를 신고 걷는 소리처럼 어색하게 들렸다. 조그만 발소리는 제법 가까운 곳에서 멈췄고, 그 뒤를 이어 바스락, 하고 종이를 펴는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아득하게 들려오는 매미 소리, 이따금씩 광장 옆으로 길게 뻗은 큰 도로를 달리는 차의 엔진 소리 등, 그 이후로도 들려온 소리는 여럿 있었지만 가까이에서 들려왔던 조그만 발소리의 주인은 어디론가 가버린 듯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커다란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져 햇볕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서서히 눈을 떠 보니,

 

"…에."

발소리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조그마한 여자애가, 까만 양산(수놓아진 문양이나 재질로 보아 상당히 비싸보이는 양산이었다)을 들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무언가 레이스가 치렁치렁하게 늘어져 있는 검은 원피스에, 희고 작은 발의 이미지에 상반되는 검고 커다란 슬리퍼, 한쪽 어깨에만 걸쳐 놓은 조그마한 검은 가방,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 특히 바라보면 볼수록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는, 그 검고 커다란 눈────. 하얀 피부와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색으로 몸을 감싼, 고아한 분위기의 그 아이는 무표정인 채 말없이 내 셔츠 끝자락을 잡아당길 뿐이었다.

"…….'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최대한 움직임을 아끼는 듯한─ 어찌 보면 도도한 느낌마저 드는 미약한 손짓. 그 손짓의 의미를 몰라 바보처럼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자니, 아이는 갑자기 셔츠를 놓고 주섬주섬 검은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이윽고 꺼내든 것은 아무렇게나 구겨진 종이조각이었다. 아이는 그 종이조각을 내 손에 올려놓고는, 처음의 무표정 그대로 고개를 살짝 까딱일 뿐이었다. 그 신호의 뜻마저도 모를 내가 아니었기에, 꽤 부담감이 느껴지는 아이의 눈길을 외면하며 종이조각을 펴 보았다.

[광장에서 운명의 상대를!]

굵은 매직으로 정성들여 쓴 듯한 글씨체, 꼬깃꼬깃 접혀 있었던 흔적. 틀림없었다. 분명히 내가 아무렇게나 구겨놓고 던져버린, 그 종이였다.

"이건 왜───"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아이가 다시 내 셔츠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한 힘으로, 마치 '날 따라와라'라고 말하듯 일정한 리듬으로 셔츠를 당겼다 놓았다.

 

'…따라오라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따라갈 수도 없었다. 내게는 '그 곳'에 다시 돌아가야 할 책임이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누나의 쪽지에 적힌 암호(?) 같은 문장을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 아이의 행적, 분위기는 분명 일반인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아이가 종이에 써진 '운명의 상대'라고 쉽게 납득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다. 누나의 성격상 누군가 마중을 나와준다는 뜻으로 이렇게 적어놓았을 지도 모르고. 여하튼 '그 곳'에 돌아가기 위한 열쇠로서 이 아이가 온 것인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이 의미 모를 쪽지에 이렇게나 반응하는 건지 알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목적과 신변을 알아내야만 했다.

  • profile
    Just 2013.09.07 18:24
    환경 미화원이 이 글을 좋아합니다 b
  • ?
    개소실 2013.09.07 18:44
    니시오 이신이 이 글을 좋아합니다(?)
  • profile
    코인천국 2013.09.07 20:49
    새로운 소설들은 언제나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군요.ㅋㅋ
  • profile
    공책상자 2013.09.08 01:16
    그 예로 마스터님의 컴파일링크가 있죠

    그나저나 이 습작은 판타지인가봐요
  • ?
    개소실 2013.09.11 02:49
    판타지라면 판타지? 입니다만... 그다지 판타지가 큰 요소로 자리잡진 않아요. 뭐... 나중에 더 써 봐야 알겠지만;
  • ?
    Calinargo 2013.09.08 03:45
    므어엉....
  • ?
    개소실 2013.09.11 02:50
    으어멍....
  • profile
    하얀나무 2013.09.25 05:34
    광장에 가면 운명의 상대를 만날 수 있다라. 가보고 싶다.
  • ?
    개소실 2013.09.25 07:19
    허허. 전 이미 상대가 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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